"뜨는 아시아 시장 잡아라"…'금융 빅딜' 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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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 등 AIG·ING·RBS 매물 잇따라 인수
몸집키운 아시아계, 서방 금융사와 대등한 싸움
"없는 돈 다 탈탈 끌어 모아서라도 아시아 금융시장은 잡아야 한다. "
최근 세계 주요 금융사들이 미국 유럽을 밀어내고 지구촌의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위기에 큰 타격을 입은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자본확충을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서자 아시아 시장 진출이나 영업 확대를 노리고 있던 금융사들이 앞다퉈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와 같은 서방 선진국 금융사들의 일방적인 아시아 진출이 아니라 서방 금융사들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몸집을 키운 아시아계 금융사들이 시장 쟁탈전에 가세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아시아 금융계 '빅딜'
대형 금융사들의 아시아 금융시장 공략은 하반기 들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금융사들의 빅딜 참여가 두드러진다. 싱가포르 3대 은행 중 하나인 OCBC는 15일 네덜란드 ING그룹의 아시아지역 프라이빗뱅킹(PB) 부문을 15억달러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작업은 연말께 마무리될 예정이며 인수 완료시 OCBC의 PB사업 규모는 3배 이상 늘어난 230억달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지난 13일에는 홍콩의 보험업 전문 투자펀드 프리머스파이낸셜이 미국 AIG의 대만 자회사 난산생명을 21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AIG의 자산운용 부문은 지난달 홍콩 재벌 리처드 리가 이끄는 사모펀드회사인 퍼시픽센추리그룹 산하 브리지파트너스에 매각됐다. 이에 앞서 호주 4대 은행인 ANZ는 지난 8월 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의 소매 · 상업금융 부문과 대만 필리핀 베트남의 기업금융 부문을 총 5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유럽 금융사들도 아시아 진출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씨티그룹은 지난 13일 베트남 호찌민시에 미국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소매영업 지점을 개설해 개인 대상 예금과 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총 8500만명의 인구 가운데 10%만이 은행 계좌를 갖고 있어 금융계 미개척 지역이나 마찬가지인 데다 올해도 5%대 경제성장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베트남 진출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에 앞서 영국계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베트남에 진출해 소매영업 서비스를 하고 있다.
유럽 최대 은행인 HSBC는 내년 2월부터 마이클 게이건 최고경영자(CEO)의 사무실을 영국 런던 본사에서 홍콩으로 옮길 계획이다. 올 상반기에만 중국과 홍콩에서 전체 세전 순이익의 약 40%를 벌어들였을 정도로 아시아 시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줬기 때문이다. HSBC는 이 비중이 향후 5~10년 내 50% 이상으로 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SBC는 RBS의 총 3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지역 소매 · 상업은행 부문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 일자리 증가에도 한몫
금융사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 금융권 일자리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금융권에서는 서서히 고용이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SC는 향후 1년반 동안 소비자금융 사업부문에서 85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C는 그동안 RBS 아시아 사업부문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등 아시아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HSBC도 올해 말까지 홍콩에서 100명,중국 본토에선 1000명의 인력을 확충할 방침이다.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채용을 계획 중이다.
RBS 아시아 사업부문 일부를 인수한 ANZ는 경력직 PB 100명을 새로 고용키로 했다. 뱅크오브뉴욕멜런도 150명 수준인 홍콩 직원 수를 200명 정도로 늘리기로 했다. 홍콩 헤드헌팅 회사인 맨파워가 815개 홍콩 회사들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 소폭이긴 하지만 4분기에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응답한 금융사가 줄이겠다고 한 금융사보다 많았다.
박성완/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