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5주년 '韓流 이젠 경제다'] (2) KDI서 속성 '1대 1 과외'… 현대重ㆍ삼성전자 둘러보고 '감탄'

(2) 개도국 연수단 몰려온다
아시아 13개국서 'KDI 연수'…지금까지 1천명 다녀가
지난 8일 서울 청량리동의 한국개발연구원(KDI) 회의실.인도네시아 고위 관료 23명이 계란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재무부 차관을 비롯해 예산,금융감독,재정정책,국제협력 담당 국장급 공무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재무부 장관만 빼곤 총출동이었다. 국가개발기획청 국장과 중앙은행에서 온 4명의 국장급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곤 줄곧 자리를 지켰다. 10시간 내내 발언자의 얘기를 경청하며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질문도 했다. 점심도 샌드위치로 때우며 토론을 이어갔다.

인도네시아 고위 관료들이 대거 KDI를 방문한 것은 한국의 앞선 경제발전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인도네시아 정부 요청으로 경제발전 경험 전수에 나서기로 하고 자문단을 구성,현지에 파견했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가 단장을 맡았고 재정과 예산,경쟁정책,금융감독,파생상품 등 각 분야 전문가 5명이 자문단에 참여했다. 이들은 4월 초 현지를 방문,고위 관료들과 만나며 수요조사를 통해 정책적 우선순위를 파악했다. 이후 6~7월 세부실태를 더 파악해 현지에 맞는 정책 보고서를 작성,이날 중간보고대회를 가진 것이다. 이날 워크숍에선 권 단장을 비롯한 5명의 국내 전문가들이 인도네시아 고위 관료들과 1 대 1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자문하는 시간도 가졌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한국의 경험을 짧은 시간 안에 전수받는 '속성 1 대 1 과외'를 받은 셈이다.

권오규 전 부총리는 "지난 7개월간 현지 조사와 자체 연구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 실정에 맞는 정책 방안들을 제시했다"며 "워크숍에 참여한 면면을 봐도 차관급 이상 인사가 3명이나 포함돼 있을 정도로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어하는 열정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무부의 경우 아시아재단이라는 기금을 만들어 처음 지원한 국가가 인도네시아일 정도로 잠재력이 큰 나라"라며 "우리는 비록 돈을 지원하진 않지만 인도네시아에 우리 경제발전 경험을 무료로 전수해준다는 것은 돈을 주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유니타 린다 사리 인도네시아 재무부 금융감독청 시장국장은 "한국의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현지에 맞는 정책대안을 제시해줘 새로 배운 것도 많고 영감을 얻는 것도 있었다"며 "이런 기회를 앞으로도 자주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성공신화를 배우러 우리나라를 찾는 개도국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KDI는 최근 들어 거의 매주 한 차례씩 개도국 공무원 연수단 대상 워크숍을 열고 있다. 대부분 현지 요청에 의해서다. 지금까지 다녀간 국가만도 13개국에 이른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베트남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매년 한두 차례씩 연수단을 구성,한국을 다녀가고 있다. KDI 경제협력실 김은혜 연구원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 발전경험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 개도국 고위 관료는 모두 1000명이 넘는다"며 "연수단은 대부분 국장급 이상으로 한국에서 배운 노하우를 현지에 돌아가 실제 정책에 적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개도국 연수단이 한국을 방문할 때 빠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산업현장 방문이다. 연수단으로 온 개도국 공무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책 조언도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산업현장에서 더 많이 배우고 간다"고 말한다. 개도국 공무원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딜까. KDI 관계자는 "바로 울산 현대중공업"이라고 말했다. 허허벌판에서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맨손으로 일군 조선소 도크와 건조 중인 선박들을 직접 보고 싶어한다는 것.지난 9일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카자흐스탄 공무원들도 10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현장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개도국 공무원들이 현장 방문을 끝내고 나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런 좁은 땅덩어리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연수단의 현장방문을 동행한 김연정 KDI 정책대학원 연구원은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떤 아시아 국가의 경우 산업현장을 둘러본 뒤 애초 연수과제는 뒤로 한 채 한국의 산업정책부터 배우고 싶다고 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자문단을 난처하게 만든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단골 방문지다. 서울 서초동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홍보관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첨단 TV와 휴대폰,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 등을 나란히 전시해놓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데서 벗어나 직접 제품의 작동과 성능을 시현해볼 수 있는 체험식 전시관이기도 하다.

김준식 삼성전자 홍보팀장은 "어떤 외국인들은 한 시간 이상을 전시장에 머물면서 한국 전자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상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며 "LED TV와 김치냉장고 등 자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