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수홍 인천대교 대표는…경영성과 해외서 더 인정

환란때 사업접고 간 캐나다서 인천대교 투자자 만나

1959년 영종도에서 태어난 김수홍 대표는 인천 수성초등학교를 배로 통학하며 유년기를 보낸 뒤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대 공대 교수를 지낸 부친(김종식씨)을 따라 상경,보인중학교와 동대부고를 졸업했다. 부친은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와 판문점,성균관도서관을 설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세가 기울어 20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노점상과 장사를 하면서 공부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인 리버사이드 UCR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했으나 미국생활이 너무 힘들어 1986년 휴학하고 귀국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 다시 돌아와 가구와 석재 사업에 손댔다. 그의 '코리아드림'은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꺾이고 말았다. 사업을 접은 그는 캐나다로 갔다. 한국에 도움이 되는 외자유치 사업을 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캐나다에서 그는 한 지인을 만났다. 이것이 인천대교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계기였다. 그는 지인을 통해 캐나다 아그라사에 인천대교 투자사업을 적극 제안했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천을 다리로 연결했을 때 생기는 물류비 절감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에 비춰 통행량이 보장되는 만큼 장사가 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인천시와 아그라사 사이에 제안서가 오갔고 결국 인천대교 외자유치 사업으로 연결됐다. 아그라사가 1999년 다국적 기업인 영국 에이멕에 합병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인천대교 사업에 대한 그의 비중이 감안돼 에이멕과도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현재도 에이멕 한국지사장으로 인천대교 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인천대교 사업을 통해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외국자본의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내 최초로 입찰 때 사업시행자와 시공사를 분리하고 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했다.

김 대표의 경영성과는 해외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 기술,금융,사업구조 부문에서 세계적인 상을 휩쓸었다. 기술분야에선 세계적 건설전문지인 영국 '컨스트럭션 뉴스'와 'ENR'로부터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프로젝트' '2007 올해의 뉴스메이커 25인'으로 각각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