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세…해외 부동산 투자 다시 활기

美ㆍ英 등 집값 회복세도 한몫
8월 투자액 2290만弗로 늘어
서울에서 5억7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던 은퇴자 A씨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때문에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소득증명을 하지 못해 이 아파트에 끼어 있던 대출금 3억원 가운데 5000만원 이상을 승계할 수 없다는 은행 측의 설명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A씨는 원 · 달러 환율이 1160원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다. 평소 '은퇴 이민' 생각도 있던 A씨는 큰맘 먹고 해외부동산 중개회사 상담 창구를 두드렸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원 · 달러 환율이 1100원대 중반까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해외부동산으로 눈돌리는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해외부동산 중개회사인 루티즈코리아에는 작년 금융위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 하루 1~2통에 그치던 투자문의 전화가 요즘은 하루 10통에서 20통까지 울려댄다.

해외부동산 컨설팅업체인 IRI코리아 김준성 사장은 "미국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소식도 나오면서 해외부동산 가격대를 살피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국인의 해외부동산 취득액은 작년 7월 7090여만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급감, 지난 1월엔 400만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세계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미국 등지의 주택시장 상황이 호전 기미를 보임에 따라 해외부동산 취득액은 지난 6월 이후 2000만달러대를 다시 넘겼다. 이처럼 시장이 되살아나자 관련 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해외부동산 컨설팅회사인 맵리얼티는 한동안 중단했던 미국과 말레이시아 부동산 투자 세미나를 이달 초에 열었다. 지난 상반기엔 국내외 참여업체가 적어 군데군데 부스가 비었던 해외유학이민 투자박람회도 지난달 26,27일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 개최됐다. 투자방향도 '외국→한국'에서 '한국→외국'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미국 등지의 교포들이 국내 미분양 아파트에 집중 투자하는 모습이었으나 환율하락으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는 환율요인 외에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중국 등 주요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 양상을 보이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8월25일 발표된 미국 20개 주요 도시 부동산가격 지수인 케이스실러지수는 36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반전됐다. 전월보다 0.94% 상승한 141.36을 기록했다. 지난 7월의 미국 내 기존 주택 거래량도 총 524만건(연간으로 환산한 수치)으로 전달에 비해 7.2% 증가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캐나다 토론토의 7월 주택거래량도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하지만 해외부동산 매수세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다. 해외부동산 중개업체 루티즈코리아 홍은희 팀장은 "작년 9월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해외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데다 미국 내 주택대출 심사도 여전히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투자 물건은 주로 50만달러 이하의 중저가 차압매물이나 급매물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 내 차압매물은 은행 감정가의 50%,집값의 40%까지 현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승익 사장은 "미국 LA의 30만~40만달러 방3개짜리 주택의 경우 현지에서 50% 정도 대출받으면 한국돈 2억원 선이면 투자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자산운용사들의 해외쇼핑 바람도 조만간 불 전망이다. 가격이 고점 대비 85% 수준으로 떨어진 해외 오피스빌딩을 매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조사 중이다.

장규호/노경목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