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담은 풍경 뒤로 희망이 보인다

美 추상표현주의 대가 미첼 작품전
"나는 내 안에 지니고 있는 풍경을 기억해 내어 그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것들은 변모되기도 하지요. 자연은 그 자체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나는 그것을 더 낫게 그리고 싶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그대로 표현할 능력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나는 그저 자연이 내게 남기는 것을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조안 미첼(1925~1992년)이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화업 반세기 동안 화두로 삼았던 조형 미학론이다. 이처럼 "자연을 더 낫게,더 훌륭하게 그릴 자신이 없다"고 말한 미첼의 작품전이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미첼은 1940년대 당시 전혀 새로운 회화적 표현이었던 추상표현주의를 20세기의 대표적 예술 사조로 발전시킨 윌렘 드 쿠닝,잭슨 폴락 등과 함께 활동한 작가다.

'드로잉'이란 타이틀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1967~1992년에 그린 대표적인 드로잉 작품 30여점 및 1950~1980년에 제작된,마구 휘두른 듯한 색채 작업 6점이 걸렸다. 종이 위에 파스텔과 색연필,수채물감,크레용으로 표현된 선과 색감을 통해 직접적이며 진솔한 미첼의 미학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 드로잉 작품들에는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을 비롯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이 묻어난다. 미첼 특유의 거침없는 붓질은 대상에 넘치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듯하다.

실제로 그의 회화적 구성이나 화법은 10년 단위로 변화했다. 1950년대에는 큐비즘(Cubism)의 영향으로 짧고 강렬한 스타카토 리듬을 추구하다가 1960년대 후반에는 신체적 운동감이 엿보이는 강한 붓 놀림과 흘리기(Dripping) 기법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새로운 건축적 블록들을 그리며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년)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했다. 1980년대 초반 언니와 친구 등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병들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초기작들보다 더 혁신적이며 폭발적으로 예술적 노력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힘찬 붓놀림과 섬세한 색채로 묘사한 미첼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자리"라고 말했다. (02)733-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