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대동아 공영권의 교훈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공식 주창한 건 1940년 8월이다. 당시 외상이던 마쓰오카 요스케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내세우며 이 단어를 처음 썼다. 아시아 민족이 서양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결성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일본 중국 만주를 중추로 동남아와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한 지역이 공존 · 공영을 위해 뭉치자는 것이다. 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대동아 공영권은 결국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허울에 불과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지금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다. 8 · 30 총선에서 외교 정책방향으로 내건 뒤 최근 한 · 중 · 일 정상회담에서도 적극 제기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여태까지 미국에 너무 의존했다. 새로운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는 한 · 중 · 일 3국의 장기 목표로 공동성명에 반영됐다. 70년 전과는 시대상황이 다르지만 서양에 맞서기 위해 동아시아를 유럽연합(EU)처럼 블록화하자는 논리와 지향점은 같다. 일본이 주장하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이뤄지기까지는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란 벽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때 중국과 일본이 주도권 다툼을 할 건 분명하다. 공동체의 범위를 놓고 두 나라 간 시각차가 뚜렷한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3(한 · 중 · 일)을 선호한다. 반면 일본은 아세안+3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끌어들인 아세안+6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일본이 인도와 호주 등 대국을 포함시키려는 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미국이란 벽이다. 동북아시아 질서에 핵심적 역할을 해온 미국이 동아시아만의 공동체를 인정할 것이냐다.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처음 들고 나왔을 때 미국 언론은 그를 '반미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이달 초 회견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에 미국은 빠진다"고 밝히자 미국 정부는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마지막으로 역내 국가 간 조화를 어떻게 이루냐다. 한 · 중 · 일만 해도 뼈아픈 식민지배의 역사로 감정의 골이 남아 있고,영토 시비도 잠재해 있다. 게다가 여전히 사회주의인 중국의 체제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선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은 그동안 미국에 고분고분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 대등외교를 외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아시아 국가들끼리 손을 잡고 자주를 외치자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의 국민들 사이엔 이 같은 일본의 목소리가 또다른 대동아 공영권 논리가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큰 게 사실이다. 일본은 한국의 주요 20개국(G20) 멤버 참여와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것만 봐도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힘을 합쳐가며 잘 살아보자는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호가 얼마나 허울뿐인지를 알 수 있다. 어찌됐든 한국으로선 '원 아시아' 구호 뒤에 숨겨진 냉혹한 국제질서 변화의 흐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세 변화에 한가하게 대처하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던 게 꼭 100년 전이다.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