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줄로 사람을 얻고 세상을 호령했던 문인들의 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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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얻은 글재주 류소천 지음 | 박성희 옮김 | 북스넛 | 378쪽 | 1만8000원적어도 20세기 초까지 중국은 근 · 현대보다 고대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제국이었다. 좋았던 옛날,오래된 과거일수록 사람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이상사회에 가까웠다. 따라서 역사도 인간세상이 타락해온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훌륭한 작품이란 옛 선인의 명구를 단 한마디라도 차용하고 그것을 노래해야 제대로 인정받았다. 어떤 작품들은 옛 작품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듯 전고(典故)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문학을 공부하려면 제일 먼저 선배 시인의 족적을 되짚고 답습하며 외워야 했다. 그래서 "중국의 어떤 시인을 좋아하는가"라는 식의 질문을 받았을 때 현대의 시인이라 할지라도 동시대는 제쳐두고 먼저 이백과 두보,도연명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귀와 눈에 익숙한 중국 옛 시인들의 자취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기록된다. 문인들이 힘써 옛 시인의 전례를 모아 해석하고 작품에 얽힌 시화(詩話) 지식을 뽐내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원제:品中國文人)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품(品)이란 '비평한다'는 말이니까 '중국문인비평집' 정도가 되겠다. 여기에는 기원전 시대를 살았던 초(楚)의 시인 굴원과 《사기》를 쓴 사마천,부잣집 딸 탁문군을 꿰어찬 지식장사꾼 사마상여 등의 삶과 창작배경이 소개된다. 위진 교체기 죽림칠현의 리더격인 혜강이 '풍류명사'인 것은 당연한 평가지만,그 다음부터 문인들에게 달아준 타이틀이 신선하다.
도연명은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두보는 '속세의 고통을 대변한 관음보살' 식이다. 이 밖에 당(唐)의 이백과 백거이,오대십국시 기의 이욱(李煜)까지 모두 9명의 삶을 작품 중심으로 소개했다.
문인의 삶은 정사만으로는 얘기할 것이 없다. 소설가인 저자는 많은 시화집과 야사를 동원해 기존의 평가들을 뒤집는다. 예컨대 남당(南唐)의 황제 시인 이욱(937~978년)은 정사에서는 무능한 망국군주로 평가되지만 이 책에서는 '어질고 따뜻했던 국왕 시인'의 타이틀로 소개된다. 그는 본래 황제의 위(位)와 인연이 없었지만 황제가 됐고,황제의 직무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는 아내와 처제를 사랑했고,나라가 망하는 순간에도 재치있는 여인을 그리워해 절간을 드나들었으며,칠석날에 태어나고 칠석날 정복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정치나 권력에는 관심도 소질도 전혀 없던 이욱이 왕이 된 것은 운명의 비극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그의 바람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삶을 즐기는 보통 남자가 되었을 것이나 운명은 그에게 보통의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갓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이다. "
야사적 요소가 풍부한 이 책에는 중국 여인들의 족쇄였던 전족(纏足)에 관한 일화도 소개된다. 전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저자는 황제 이욱의 궁녀 요낭의 작은 발이 시작이라고 한다. 세치밖에 안 되는 발로 춤추는 요낭의 성적 매력이 황제를 사로잡았는데,다른 궁녀들이 질세라 발을 싸매기 시작한 것이 민간으로 흘러나와 풍습이 됐다는 내용이다. 그 발이 연꽃잎을 닮았다 해서 금련(金蓮)이라 불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지만,이처럼 빗나간 미학은 북방민족의 풍습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