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시대 오면 달라지는 3가지
입력
수정
(1) 부품 절반으로 줄어든다"전기차(EV)에 들어가는 부품은 많아야 엔진 차량의 절반밖에 안 될 겁니다. 기존 관념에 고정돼 있으면 언제든 망할 수밖에 없어요. "
(2) '갑'과 '을'이 바뀐다
(3) 전력·화학 등 새 '플레이어' 확대
지난 주말 도쿄모터쇼에서 만난 일본 금형 제조업체(군마현 소재,작년 매출 13억엔) 사장 A씨는 '기키(危機)'와 '기카이(機會)'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엔진이 사라진 시대에 적응하는 부품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전문가들은 EV 시대가 본격화될 경우 자동차산업 구조에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전력 · 전기 · 화학 · 상사 등 자동차와 관련 없던 분야의 기업들이 '신규 플레이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해온 완성차 업체들은 벌써부터 차량용 2차 전지업체 등 대형 부품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이 바뀐다EV 시대엔 100여년을 풍미했던 내연 엔진기관과 관련 부품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중견 전기차 제조업체인 레오모터스의 이정용 사장은 "기존 자동차 부품 중 절반이 사라지고,남는 절반의 부품도 50%는 전기차에 맞게 개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브레이크용 진공 펌프,에어컨 등 엔진 회전으로 작동했던 부품은 전기로 작동되게끔 바뀌어야 한다. 이 사장은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일본 금형업체 A사장은 "금형 쪽에선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을 억제하는 방열제품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V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전지를 비롯해 전기모터,컨버터 등 전기차 핵심 부품을 만드는 업체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EV 관련 부품을 독자 개발하는 데 혈안인 이유다.
도요타는 1990년대 초부터 하이브리드카 기술 개발을 통해 EV 시대에 대비,계열 부품 회사만으로도 EV를 100%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김준한 KOTRA 도쿄센터 과장은 "도요타 계열 부품회사인 덴소는 매달 기술부문 부사장을 의장으로 하는 전문 회의를 열고 유망 EV 부품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산업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새 풍속도다. 화학업체들이 차량용 2차전지로 신규 참여한 것을 비롯해 전력회사와 정유사들은 충전망 구축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저속형 전기차 개발업체인 그린카클린시티의 원춘건 사장은 EV가 가져올 가장 중요한 변화로 "누구든 자동차를 제조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엔진 및 트랜스미션에 대한 개발 능력과 대량 조립라인을 갖춘 글로벌 기업만이 살아남는 내연 엔진 시대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보도에서 EV 시대로 갈수록 기술 우위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친환경 자동차 기술은 초기 투자비용이 큰 데 비해 회수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재정 여력이 풍부한 기업만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카 기술만 해도 도요타는 10여년간 수조원을 쏟아붓고서야 최근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닛케이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항공산업처럼 자동차산업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엔진룸 때문에 기존 자동차는 디자인에 제약이 있었다"며 "부품이 대거 사라지면 그만큼 공간이 생기는 것으로 디자인 쪽에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