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에게 경배하듯 20년 열정 들려줄게요"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 피아니스트 백혜선씨
"1989년 세계 무대에 데뷔했던 뉴욕 링컨센터 독주회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이 공연을 보고 얼마 후 돌아가셨죠."

오는 8일부터 세계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갖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씨(44)는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의 음악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데뷔 무대를 꼽았다. 그가 1989년 메릴랜드 윌리엄 카펠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열렸던 링컨센터 리사이틀은 단지 데뷔 무대에 그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인정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저보고 '교회 피아노 반주나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며 "공연을 보시고는 '이제 너는 피아노와 결혼했으니 더욱 잘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딸의 콩쿠르 성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병을 숨겼던 아버지는 병이 중한 상태에서도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그의 데뷔 무대를 찾았다. 몇 달 후 부친은 유명을 달리했다. 백혜선은 힘찬 타건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차이코프스키 콩쿠르,리즈 콩쿠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해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또 29세이던 1994년 최연소 서울대 교수에 임용돼 화제가 됐다.

그러나 2005년 돌연 안정적인 교수직을 사직하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당시 교수,연주자,1남1녀의 엄마 등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며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던 터라 엄마가 가장 필요한 12살까지는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들 원재군(8)은 현재 스페셜 뮤직스쿨 오브 아메리카에 다닌다. 스페셜 뮤직스쿨은 입학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영재 학교다. 이번 연주회에서 그는 바흐-부조니의 '오르간 코랄 전주곡',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F장조',바르토크의 '피아노 소나타',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들려준다. 그는 "첫 곡인 바흐-부조니 작품은 신에게 제의를 드리듯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골랐다"며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F장조'는 제가 고전주의 음악에 자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줬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마지막 곡인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현재 그의 '화두'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리스트는 음악에 몰두할지,세상과 타협하고 살지 고민할 때 이 곡을 만들었다"며 "지금 저도 어떤 길로 가야할지 생각이 많아 최근 리스트 관련 책을 보면서 '적절한 라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그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하려는 사람을 돕고 싶다"며 "교수 등 특정한 곳에 적을 두기보다는 보다 많은 학생들을 지원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15일)을 포함해 부산 부산문화회관(8일),대구 천마아트홀(13일),울산 현대예술관(17일)에서 열린다. (02)518-7343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