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경제ㆍ물류 알수 있는 '죽간' 첫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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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前 거래 기록…태안 마도 침몰 선박서 찾아내
1208년 봄 개경의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화물을 잔뜩 실은 배가 서남해안을 출발해 개경으로 향했다. 배에 실린 화물은 죽산현(해남),회진현(나주),수녕현(장흥) 등의 지방 향리들이 대장군(종3품),별장(別將 · 정7품),교위(校尉 · 정9품) 등 중앙의 무반들에게 보내는 것.도자기,죽(竹)제품,벼,조,메밀,콩,메주,고등어 · 게 · 새우 · 멸치 등으로 담근 젓갈 등 종류도 다양했다. 순항하던 배는 그러나 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예로부터 난행량(難行梁)이라고 불렸던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 이르러 침몰했다.
지난 6월 마도 앞바다 밑에서 발견된 두 척의 옛 선박 가운데 '마도 1호선'의 실체가 밝혀졌다. 선체 상부와 주변에서 화물의 내용과 발신지,수신자,수량 등을 기록한 죽간(竹簡)과 목간 64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4일 "지난 4월부터 마도 해역에 대한 수중발굴 조사를 한 결과 여러 종류의 곡물과 도자기,죽제품,죽간 등 1430점을 발굴했으며 길이 10.8m,중앙 폭 3.7m인 '마도1호선'을 오는 15일까지 인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나무에 글자를 적은 고려시대 죽간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수량(48점)이 많은 데다 죽간의 기록과 발굴된 유물이 대부분 일치해 800년 전의 조세제도와 경제시스템 등을 규명할 '타임캡슐'로 주목받고 있다. 발굴된 죽간과 목간에는 '정묘(丁卯)10월,12월28일''무진(戊辰) 정월,2월19일' 등의 간지 및 날짜와 함께 발신지와 발신자,수신자,화물종류와 수량,단위 등이 정확하게 적혀 있다. 판독 결과 화물은 죽산현,회진현,수녕현 등에서 보낸 것으로,호장(戶長) · 장(長) 등의 지방 향리가 무신정권기의 권력 실세들인 대장군,별장,교위 등의 중앙 무반들에게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죽간에는 발신자의 직위와 이름은 물론 김순영(金純永) · 권극평(權克平) · 윤방준(尹邦俊) · 송수오(宋壽梧) 등 수신자의 관직과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또 벼(租 · 白米),조(粟),메밀(木麥),콩(太),메주(末醬 · 말장) 등의 곡물류와 고등어(古道) · 게(解) 등으로 만든 젓갈(醯) 등의 다양한 화물 이름과 함께 화물별로 석(石 · 섬),두(斗 · 말),항(缸 · 항아리) 등의 단위와 수량도 정확히 기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大將軍金純永宅上田出租一石(대장군김순영댁전출조일석 · 대장군 김순영 댁에 토지에서 나온 벼 1섬을 올린다)'이라고 쓴 죽간 6점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김순영은 1199년 장군으로 승진했으며,1242년에 만들어진 '김중구묘지명(金仲龜墓誌銘)'에도 신종 때 장군을 지낸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순영은 당시 무신정권의 집권자였던 최충헌 밑에서 1199년 이후 대장군으로 승진한 것으로 추정되며,그가 장군에 오른 이후 정묘 · 무진년은 각각 1207년과 1208년에 해당한다. 결국 '마도 1호선'은 1208년 봄에 출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성낙준 소장은 "고려 때 조운선은 각 지방에서 가을걷이한 곡물을 겨울에 바닷가 조창지로 모았다가 이듬해 3월부터 운반하기 시작했다"며 "마도 1호선은 1208년 2월19일 이후 출항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마도 해역에서는 기장과 피,생선뼈,멸치젓,대나무 반,석탄 등의 화물도 발견됐다. 아울러 청자상감 표주박모양 주전자가 받침접시 및 2개의 투각받침대와 함께 묶음(세트)으로 발굴돼 주목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