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증권사 CMA…자금 1조원 넘게 빠져

●CMA 지급결제 서비스 100일
계좌수는 70만개 늘어
증권사들이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통해 소액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한 지 오는 11일로 100일을 맞지만 기대했던 '머니무브'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CMA의 금리는 크게 낮아진 반면 은행권이 고금리예금 판촉경쟁에 나서면서 오히려 시중자금은 은행권으로 흘러들었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 업무를 취급하는 25개 증권사의 전체 CMA 계좌 수는 지난 5일 현재 972만3367개로 지난 7월 말보다 약 70만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계좌잔액은 40조원에서 38조8200억원으로 1조2000억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4일 주요 증권사들이 일제히 지급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이후 석달여 동안 하루 평균 7000개의 계좌가 새로 개설됐지만 자금은 오히려 매일 120억원씩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당시 은행권의 수시입출금식 예금보다 금리가 높아 지급결제 서비스 도입으로 대규모 자금 유입이 있을 것이란 기대와는 상반된 결과다. 국민 우리 외환 등 5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현재 293조원으로 3개월 전보다 오히려 11조원가량 증가했다. 과거 직장인들의 급여통장으로 대표되던 요구불예금 잔액도 129조원에서 133조원으로 늘었다.

CMA로의 자금 유입이 부진한 것은 무엇보다 금리 하락으로 매력이 반감됐기 때문이다. 지급결제 도입 초기에 각 증권사들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신규계좌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올해 초 연 4.5~5%를 넘나들던 CMA 금리가 연 2%대 중반으로 떨어지면서 잔액이 없는 '공(空)계좌'만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윤성희 동양종금증권 마케팅담당 상무는 "CMA에 머무는 자금은 투자를 위한 대기자금의 성격을 띠고 있어 증시 상황에 따라 계좌 수와 잔액이 항상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며 "증권사들의 마케팅 경쟁으로 교차판매가 늘어나면서 자금 유입없이 계좌 수만 불어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CMA와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역전된 것도 한 요인이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겨냥해 고금리 예금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CMA 계좌에서도 일부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이후 신한은행의 '민트정기예금' 금리는 연 3.5%에서 4.4%로 높아졌고,우리은행도 1년짜리 '키위정기예금' 금리를 연 3.9%에서 최고 4.7%로 올려잡았다.

입출금자동화기기(CD/ATM) 등 인프라 부족과 지급결제 서비스 적용이 제한적이란 점도 CMA에 자금이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은행 ATM기를 이용해 CMA 계좌로 자금을 이체할 땐 여전히 높은 수수료를 물어야 하고 온라인 쇼핑이나 오프라인 업체의 자동결제 계좌로 등록하는 경우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계좌를 급여통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 투자자는 "은행연계 카드의 결제가 안되는 등 불편한 점이 남아있어 월급통장을 CMA로 바꾸기가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객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조건에 따라 우대금리를 주는 것은 물론 담보 및 신용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늘어나고 있다. 현대증권과 동양종금증권은 각각 법인전용과 육군장병 급여통장용 상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고객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김희주 대우증권 상품기획부장은 "증시 조정과 은행권의 고금리예금 출시로 당장 자금 유입이 원활하진 않지만 투자자들의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CMA는 향후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 서비스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고객기반을 넓혀나가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지연/김재후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