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몰링 열풍] (1) "디즈니랜드 보다 재밌다"…복합몰은 집·직장 이은 '제3의 생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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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몰링,삶을연주하다
#1.일요일인 지난 8일 오후,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야외형 쇼핑몰 '그로브몰(The Grove mall)'.1930년대 LA시청 앞을 재현한 쇼핑몰 거리는 서울 명동을 떠올릴 만큼 인파로 북적였다. 아이들이 부는 비눗방울이 곳곳에서 날리고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옛날식 극장과 노천카페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몰 중앙의 분수대와 전찻길 맞은편에선 염소,조랑말 등 가축들의 경주가 펼쳐졌다. 목초더미 사이로 거꾸로 뛰는 염소와 진행자를 따라다니는 조랑말의 모습에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세 아이의 엄마인 로리아 트리샤씨는 "뛰어놀기 좋고 동물 사료 주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아이들이 디즈니랜드보다 이곳을 더 좋아한다"며 "도심과 가까워 오기 편하고 항상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온다"고 말했다. #2.홍콩 카우룽반도 중심지인 침사추이 북동쪽에 자리 잡은 '메가박스(Megabox)'몰.커다란 빨간색 상자 모양의 18층 건물 안에는 '중양절'(음력 9월9일) 휴일을 맞아 가족 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5층에 마련된 간이무대에선 아이들과 부모들이 화려한 광대 차림의 배우들이 펼치는 팬터마임 공연을 보며 즐거운 표정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존 로씨(41)는 "집에서 가까워 자주 온다"며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좋아해 11층 아이스링크를 자주 이용하고 가끔 영화도 함께 본다"고 말했다. 로씨 가족은 휴일 오후면 '메가박스'나 '뉴타운플라자','페스티벌 워크'등 복합쇼핑몰로 향한다. 쇼핑도 하고,대형 서점에서 책도 읽고,멀티플렉스에서 영화도 보고,외식도 하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그는 "쾌적한 내부 환경에 다양한 놀이시설과 식당들이 있는 쇼핑몰들이 최근 많이 생겨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홍콩에는 가족 단위로 갈 만한 곳이 많지 않은 것도 쇼핑몰을 자주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형태의 복합쇼핑몰이 발달한 미국 일본 홍콩 등 선진국에선 쇼핑과 외식,오락,여가생활을 원스톱으로 즐기는 '몰링(malling)'이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서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로 자리 잡았다. 트렌드 연구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의 표현을 빌리면 복합몰은 집과 일터에 이은 '제3의 공간'이 됐다.
다양한 상품 구색으로 쇼핑하는 재미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삶의 여유를 즐기고 편안하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생활공간이란 의미다. 그로브몰을 찾은 에릭씨(28)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신상품을 구경하지만 쇼핑은 부수적"이라며 "몰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물건을 사라'는 느낌보다는 '즐기고 가라'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 복합쇼핑몰은 '최강'의 소매업태로 자리 잡았다. 롯데유통전략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복합쇼핑몰 매출은 미국에서 전체 소매판매액의 50%,일본에선 30%를 차지한다. 금액으로는 미국이 1400조원,일본이 300조원에 달한다. 유통뿐 아니라 식음료,엔터테인먼트,서비스,건축인테리어 등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막대하다.
홍콩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복합몰을 연상시킬 만큼 쇼핑몰의 천국이다. 제주도 3분의 2 크기에 700만여명이 사는 홍콩에는 하버시티,타임스퀘어,IFC몰 등 대형 복합몰이 90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침사추이의 옛 공항 부지와 하얏트리젠시 호텔 자리 등 곳곳에 신규 복합몰 공사가 한창이다.
선진국 복합몰은 고객들이 싫증을 내지 않고 더 오래 머물도록 고객 동선을 철저히 계산해 군데군데 흥미를 유발하는 조형물들을 세우고 각종 공연,이벤트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또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편의시설을 추가하면서 더욱 '복합화'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일본 도쿄만과 맞닿은 시사이드(seaside) 쇼핑몰인 '라라포트 도요스'에는 강아지들이 바닷바람을 쐬며 마음껏 뛰놀 수 있는 600㎡ 규모의 애완견 전용 천연잔디장이 있다. 잔디장 앞쪽에는 애완동물 용품 전문매장과 애견카페도 있다. 애완견 두 마리와 함께 온 유키노 기요미씨(24 · 여)는 "강아지를 데리고 커피도 마시고 마음껏 운동도 시킬 수 있어 좋다"며 "애완견을 태우는 카트를 빌려주거나 맡아주기도 해 쇼핑하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니시자와 다쿠오 운영담당 매니저는 "도심과 가까우면서 도쿄만을 접하는 입지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편하게 쉬고 논다'는 컨셉트로 시설을 구성했다"며 "애완견 시설과 매장을 만든 것도 '애완동물과 놀고 싶다'는 도시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 도쿄=송태형/LA=최진석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