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시장 '큰손'은 없고 대형매물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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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매각 불발로 본 구조조정 현황'나날이 매물은 쌓이는데….'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이 12일 불발에 그쳤다. 매각 작업 재개는 실질적으로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하이닉스 이후의 인수 · 합병(M&A) 시장이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이 또다시 매물로 나온다.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이날 "대우조선해양 매각 시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내달 중 매각 주간사를 선정해 내년부터 재매각 작업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GS가 한 조를 짰다가 막판에 실족하고 한화 홀로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무산되고 말았던 그 대우조선해양이다.
◆"이 판에 대우조선해양까지"
뉴스를 접한 M&A 관계자들은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자금력을 갖춘 4대 그룹의 철저한 외면과 방관 속에 하이닉스 매각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직후여서 더 그랬다. 외국계 금융사의 M&A 팀장을 맡고 있는 K씨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부 그룹들의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았고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대형 매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국내 M&A 시장의 흐름과 기업들의 성장전략 변화에 맞춰 새로운 매각 전략을 짜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일단 내놓으면 누군가 가져가겠지"라는 식의 태도는 안일하고 조급하다는 지적이다.
◆4대 그룹 "구성장동력에 관심없다"
대형 M&A 시장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근본적인 요인은 매몰로 나온 기업들의 주력 사업이 기본적으로 '구성장동력'이라는 데 있다. 4대 그룹 신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태양전지 바이오 환경 등의 차세대 사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판에 수조원을 들여 반도체 조선 건설 등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4대 그룹의 경우 여느 중견 그룹들처럼 M&A를 통해 국내 재계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들 그룹은 경영합리화 차원의 내부 합병에 더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은 전자와 디지털이미징,SDS와 네트웍스를 묶었고,LG는 통신 3사,SK는 네트웍스와 워커힐을 합병하기로 했다. ◆중견그룹들 더욱 위축될 듯
4대 그룹을 제외하면 포스코와 롯데그룹 정도가 풍부한 자금능력을 갖고 있지만 양사는 철저한 관련 다각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을 사고파는 데 상당한 노하우를 지닌 두산그룹도 국내보다는 기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해외 M&A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때 M&A 시장의 강호로 등장했던 금호아시아나 유진 대한전선 등이 잇따라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의 중견 그룹들도 시장에 발길을 끊었다. 특히 이번에 효성이 '본게임'도 못해보고 중도 하차한 것은 효성의 약점 못지 않게 M&A 시장의 냉혹성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이다. 금융계에서는 PEF(사모펀드) 시장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단기에 PEF만으로 대형 매물들을 순조롭게 소화해내기에는 어려운 여건이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수가격이 1조원을 넘어서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전략적 투자자와 금융 투자자의 컨소시엄 구성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맞춤형 매각 전략 마련해야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공적기관으로 갖고 있는 제약이 크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외환은행으로부터 하이닉스 지분 인수를 제의받았지만 "이미 하이닉스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매입할 수는 없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정부나 채권단이 무턱대고 매물들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잠재적 인수 후보 기업들의 경영전략에 부합하는 '맞춤형 매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하이닉스처럼 단기간 내 원매자를 찾을 수 없는 기업 지분은 채권단 보유 물량을 기관투자가들에 단계적으로 내다 팔거나,아니면 과거 대우중공업을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로 분할한 것처럼 대상 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몇 개로 쪼개서 파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가적으로 영향력이 큰 기업의 주식을 매각할 때는 가격보다는 인수자의 능력과 진정성 등의 자격 요건을 따져봐야 한다"(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는 얘기처럼 국가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