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대학생 딸 몰래 가입시킨 극성母 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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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찾는 20대 여성들도 많아요"얼마 전 결혼한 여자 선배에게 물었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뭐였느냐고.선배는 덤덤하게 웃으며 "그냥 그렇게 되더라"고 했다. 거창한 계기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온다는 거였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지는 편안한 미소 덕분이었다고 했다.
●듀오 커플매니저 정지은씨
오늘도 수많은 미혼 남녀들은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애를 꿈꾼다. 결혼정보 업체 듀오의 정지은 노블레스팀장(45).그의 업무는 고객들의 마음이 통하게 해 결혼에 골인시키는 것이다. 고객들이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 평생 반려자로서 선택하게 한다. 그는 11년차의 베테랑 커플매니저다. 12일 오후 서울 역삼동 듀오 본사에서 정 팀장을 만났다. ▼듀오에는 언제 들어갔나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호텔에서 해외 예약 업무를 했어요. 결혼 후엔 일을 그만두고 남매들 육아에만 전념했죠.애들이 유치원 갈 때쯤 되자 다시 일을 하고 싶어졌는데 그때 듀오의 커플매니저 채용 공고를 보게 됐어요. 벌써 11년째네요. 저는 노블레스 회원들을 관리해요. "
▼커플매니저는 어떤 일을 하나요. "담당 회원(고객)의 성향을 파악해 잘 맞을 법한 상대방을 추립니다. DMS(듀오매칭시스템)라는 자체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커플 매니저들끼리 회의를 열어 각자 회원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본 회원이 수락하면 만남을 주선하죠.맞선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줍니다. 둘 다 마음에 들었다면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연애 과정에서 조언도 해 줘요. 커플매니저 업무의 궁극적 목표는 회원의 결혼이니까요. "
▼커플매니저 한 명이 담당하는 회원은?
"보통 130명을 관리합니다. 커플매니저는 전화와 이메일을 붙들고 살아요. 전화는 하루 평균 40여통,이메일은 100여통까지 씁니다. 회사로 찾아오는 회원이나 부모님도 많아요. 하루종일 떠드는 직업이죠."▼오랫동안 커플매니저를 했으니 결혼시킨 커플도 꽤 많겠네요.
"제 손을 거쳐 결혼한 커플이 250쌍 정도 될 겁니다. 너무 많아서 정확한 숫자를 헤아려 본 지 꽤 됐습니다. 듀오에선 커플매니저들에게 '성혼수당'을 주고,실적이 좋으면 시상도 합니다. 결혼 당사자에겐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
▼노블레스는 말 그대로 상류층 회원들만 있나요.
"듀오 서비스는 클래식(일반)과 노블레스로 나뉩니다. 노블레스 회원들은 직업이나 재산,가정환경 등이 나은 편입니다. 노블레스에 가입 제한이 있는 건 아니고 경력이 오래 된 커플매니저가 밀착 관리를 해 주는 게 다르죠.물론 가입비도 비싸고요. 요즘엔 노블레스 회원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클래식과 노블레스가 반반 정도예요. "
▼극성스런 부모도 많다면서요.
"대학생인 딸 몰래 찾아와 딸을 가입시킨 어머니들이 꽤 됩니다. 딸이 한 살이라도 어리고 귀여울 때 결혼시키겠다고 나선 거죠.요즘엔 아버지들도 적극적입니다. 상대방의 신상 정보를 아버지에게 먼저 보여달라고 하고,본인 입맛에 맞는 배우자로 골라 달라고 재촉합니다. '남자는 같은 남자가 봐야 안다'며 고집을 꺾지 않아요. "
▼부모와 자식 간에 선호하는 배우자 성향이 다를 수도 있겠군요.
"준수한 외모의 한의사가 있었는데 상대방의 학벌이나 직업,외모 등은 중요치 않다고 얘기했어요. 반면 어머니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재산이 수십억원 이상 집안 출신 배우자를 원했죠.이 한의사가 모 여대를 나온 평범한 여성을 원하기에 연결해 주려는데 어머니가 이를 알고선 저희한테 찾아와 아들 몰래 만남을 취소해 달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제 앞에서 부모 자식 간에 싸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
▼인기있는 직업도 변하겠네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변호사,판 · 검사 등의 전문직은 꾸준히 상한가입니다. 경제 불황 여파로 최근에는 안정적인 직업이 각광받고 있어요. 국책은행이나 공사,공무원,교사 등의 직업군이 급부상했죠.외국 유학을 다녀와 외국계 은행 등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도 인기입니다. 예전에는 회사원에 대한 반응이 시들했으나 요즘엔 집안 좋은 대기업 직원도 선호하는 추세예요. "
▼젊은 남녀들은 어떤 조건을 먼저 봅니까.
"남자들은 외모가 0순위입니다. 일단 얼굴이 예뻐야 좋아하더군요. 직업과 경제력도 꼼꼼히 봅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도 상대방이 변변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으면 싫어해요. 그래서 여성 회원들 중에 무직자는 거의 없어요. 여성의 경우 직업과 경제력을 먼저 봅니다. 요즘에는 남자의 얼굴과 키,스타일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남성 회원의 외모 컨설팅도 해 줍니다. 키가 작은 남성에겐 '키높이 구두'를 신으라고 하는 식이죠."
▼회원들끼리 만난 뒤에도 커플매니저가 꾸준히 관여하나요.
"서로에게 상대가 어땠냐고 물어봅니다. 요즘엔 매너 좋은 남자들이 많아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깍듯이 대하고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여성은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인데 남자가 차가운 반응을 보이면 황당해 하죠.그래서 남성 회원들에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의를 베풀지 말라'고 조언해요. "
▼커플매니저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회원도 있죠.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앞둔 터라 서둘러 상대를 찾아 결혼하길 원하는 여성회원이 있었어요. 자신은 평범한데 서울에 있는 의대를 나온 전문의만을 고집하다 결국 아버지가 퇴직할 때까지 짝을 찾지 못했죠."
▼기억에 남는 회원이 있습니까.
"만남을 100번 넘게 한 남자 회원이 있어요. 대기업에 다니며 괜찮은 외모에 매너도 훌륭했죠.그런데 한 여성을 두 번 이상 만나려 하질 않더군요. 예뻐서 싫다,가정환경이 무난해서 매력 없다 등 싫은 이유도 참 많았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여성을 소개받는데 매번 상대를 퇴짜놓았습니다. 제가 '한 달만 쉬어보자'고 권했으나 그 새 못 참고 또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더군요. '습관성 미팅 증후군'인 거죠.그 회원은 여러 차례 재가입했어요. "
▼결혼정보회사에 '골드미스'도 많나요.
"유능한 직장 여성들은 일에 매달리다 결혼 적령기를 놓칩니다. 본인의 조건이 좋다보니 눈이 상당히 높죠.아무래도 여성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조건이 좋은 남성을 찾는데,정작 그런 남성은 훨씬 어린 여성을 선호하거든요. 골드미스가 원하는 배우자 조건 중에 두세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현실과 타협하라고 어르고 달래죠."
▼재혼시장이 커지고 있다던데요.
"듀오에는 재혼 전담 커플매니저가 있어요. 20대 여성들 중에 '돌싱(돌아온 싱글 · 이혼남)'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어요. 대신 상대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죠.재혼 회원들은 초혼보다 교제 기간이 짧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화끈한 편입니다. "
▼기혼 커플매니저로서 조언을 한다면요. "많은 회원들을 겪어보니 외모가 훌륭해도 성격이 좋지 않으면 결혼에 성공하기 힘들더군요. 상대방이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더라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사람들은 주로 조건을 많이 따지는데요,제가 결혼해서 살아보니 나와 잘 맞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최고예요. "
글=김정은/사진=김병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