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류 보험사 리포트] (1) 佛 '미니 보험사' 거침없는 M&A…30년만에 매출 40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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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XA (上) 덩치를 키워라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샹젤리제와 맞닿아 있는 마티뇽 25번가에는 17세기풍의 2층 건물이 있다. 글로벌 보험그룹 AXA의 본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구식 건물이다. 하지만 내부는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치장된 역사문화유산이다. 프랑스혁명 당시인 1791년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국외 탈출을 시도하다 잡히기 전 머물렀던 집으로 몇 년 전까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본사였다.
간판도 잘 보이지않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이 건물은 AXA와 닮았다. 한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은 AXA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보험사다. 자산이 한국 은행 산업 전체보다 큰 1455조원(8160억유로,2008년 말 기준)이다. 지난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전 세계 8000만 고객을 기반으로 매출 162조원(910억유로),순이익 1조6000억원(9억유로)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엔 순이익이 회복돼 2조3900억원(13억유로)에 달했다.
◆M&A로 우뚝 서다
"현실에 안주하며 작은 프랑스 개구리로 남아 있으면 결국 사라질 것이란 걸 알고 있다. "(클로드 베베아 AXA 명예회장,1990년)
AXA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앙시앙 뮤추얼'이란 이름의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보험사였다. 계약자가 주주권을 갖는 상호회사로 존재가 미미했다. 변화는 클로드 베베아가 사장이 된 1975년 시작됐다. 1958년 프랑스 최고 명문대인 에콜폴리테크닉을 나와 대학 동기의 아버지인 앙드레 다르잔 당시 사장에게 스카우트된 베베아는 1960년대 캐나다에서 일하며 영 · 미식 인수 · 합병(M&A)을 여러 차례 지켜봤다. 베베아는 "보험은 위험을 떠안는 사업으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프랑스 시장은 너무 좁다. 세계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82년 파리에 근거지를 둔 생보사 드로우(Drouot) 그룹이 파산 위기에 놓이자 M&A를 시도했다. 사전에 조사해놓은 덕분에 의사 결정이 빨랐다. 프랑스 금융당국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합병 이후 직원 4000명 규모의 프랑스 7위 보험사가 됐다.
1984년 프랑스에 방카슈랑스가 도입돼 보험사의 시장지배력이 약화되자 베베아는 1985년 세계 진출을 앞당길 것을 결심하고 브랜드를 'AXA'로 바꿨다. △맨 앞에서 호명될 수 있도록 알파벳 'A'로 시작할 것 △세계인들이 쉽게 발음하고 어감이 나쁘지 않을 것이란 조건에 맞춰 개발했다. AXA는 프랑스어도 아닌 신조어로 의미가 없다. 1986년 프로방스,1988년 AGP 등 잇따른 M&A로 국내 2위 보험사로 부상한 AXA는 1991년 미국 2위 생보사인 에퀴터블 인수에 성공했다. 에퀴터블 인수는 AXA에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1997년 프랑스 1위였던 국영보험사 UAP를 합병해 프랑스 내에선 독보적 지위에 올랐다. 1995년 호주 2위인 내셔널 뮤추얼,1999년 벨기에 1위인 로열 벨지,2006년엔 스위스 1위인 윈터투어를 집어삼켰다.
1980년 3억달러였던 AXA의 매출은 2000년 1088억달러로 300배 커졌다. 1991년에는 매출의 100%가 프랑스에서 발생했지만 10년 뒤인 2000년엔 해외 매출 비중이 53%를 차지했다. ◆실패에서 배운 M&A
앙리 드 카스트리 AXA 회장은 "AXA가 성공적인 M&A를 해온 것은 실패에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87년 AXA는 벨기에 1위 보험사인 로열 벨지를 상대로 공격적인 M&A를 시도했다가 회사 측의 반격에 부딪쳤고 벨기에 감독당국의 조사까지 받았다. 결국 주식을 팔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90년에는 미국 손해보험사인 파머스를 인수하려다 주 단위의 복잡한 행정절차와 AXA의 낮은 인지도로 실패했다. AXA는 이후 진출국과 기업의 문화,감독당국의 입장 등을 충분히 연구했다. 결국 로열 벨지는 약 10년 뒤인 1999년 인수했다.
AXA는 M&A가 이뤄지면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빨리 결정하고 주요 정보를 직원에게 즉각 공개한다. 불안한 핵심 인력이 회사를 떠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보가 투명히 공개되면 인수된 회사 직원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AXA는 또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지역에 맞게 행동하라'는 방침에 따라 구체적 판단은 자회사가 내리도록 하고 있다. 존 데시 아시아 · 태평양 부문 사장(CEO)은 "본사는 생보,손보,자산운용 사업으로 잘 짜여진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며 "자회사는 지역별 사정에 맞춰 개선해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XA 이사회 멤버 19명의 국적은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 호주 등 10여개국에 달한다. 기 마르시아 AXA다이렉트 사장은 "글로벌 회사가 되려면 지역 자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며 "AXA는 1986년부터 AXA대학을 세워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AXA대학은 프랑스 보르도 2곳과 미국 버지니아에 있으며 올 4월 싱가포르에 세 번째 캠퍼스가 문을 열었다. 매년 수천명의 각국 실무진이 위험관리,언더라이팅 등을 배우며 경영진도 리더십 과정을 이수한다.
AXA브랜드를 전 세계적으로 쓰다보니 조직에 통일성이 생기고 소비자 인지도도 높다는 게 올리비에 마리 마케팅 글로벌 헤드의 설명이다. 그는 "AXA 그룹의 각 회사들은 보험상품 및 판매 채널 등에서 성공 사례를 전 세계적으로 함께 공유하고 AXA라는 단일 브랜드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AXA는 M&A한 뒤 즉각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 2007년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해 만든 교보AXA자동차보험이 대표적이다. 3년간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한 AXA는 오는 20일부터 AXA다이렉트란 이름을 쓴다.
파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