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베이징의 비밀

뉴욕하면 자유여신상과 함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린다. 102층,높이 381m(TV 전파탑을 포함하면 448.7m)에 이르는 이 초고층빌딩은 뉴욕의 상징으로서 잘 알려진 건물이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만남,'러브 어페어(Love Affair)'의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엇갈림 등 세계인에게 추억을 안겨준 낭만의 건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건물이 정확히 78년 전,단 18개월 만에 건설된 것이라면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를 짓더라도 1층에 1개월,20층이라면 20개월은 소요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짧은 건축 기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건축하기 전 논의에 5년,설계에 5년이란 시간이 투입됐기 때문에 상징물로서,그리고 짧은 시간에 건축이 가능했다는 비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08년을 뜨겁게 수놓은 베이징올림픽에는 기념비적 건축물 3개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주경기장인 Bird's Nest(鳥巢 · 냐오차오),일반인에게 Egg와 Dragon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과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이다. 자금성,톈안먼을 잇는 일직선상의 축에 과거,현대,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세기적 역사로 건축한 것이다. 또 오랜기간 '중국문화라는 알을 낳고,새집에서 키워,세계를 향해 웅비한다'는 기획하에 건축되고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에게 알린 것이다. 특히 국가대극원은 1958년 저우언라이 총리에 의해 터파기가 시작됐으나 주제 등의 문제로 중단되고,1995년에 와서 장쩌민 주석에 의해 재개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약 30년간의 논의과정에서도 초기 목표방향을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기획,완공시켰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렇게 5000년 중국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 설계를 내부의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공항설계 전문가 폴 앙드뢰에게 맡겼다는 사실이다. 정남북으로 배치돼 용의 형상을 한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3터미널 역시 노먼 포스터란 외국인이 설계한 것이다. 여기에 주경기장 설계자 헤르조그와 드 뫼론을 생각하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여기에 베이징의 비밀이 숨어 있다. 비록 민주적 절차(의사결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에는 약하다 해도 약점을 목표의 일관성 유지,치밀한 기획,열린 자세로 보완해 명품을 만드는 비밀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록 사회주의국가라는 체제 특성이 있다 해도 '십리를 가면 음식이 다르고,백리를 가면 언어가 다르며,천리를 가면 인종이 다르다'고 하는 13억 인구 중국의 다양성을 조율하는 일은 이러한 비밀이 없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종시 논란 등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우리에게도 비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김병일 < 여수세계박람회 사무총장 kimparis2000@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