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출구전략 유연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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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출구전략의 시행은 '교통사고' 환자의 퇴원 시기를 정하는 것에 비견된다. 환자는 퇴원을 꺼린다. 의료진도 완전히 회복한 뒤 퇴원할 것을 권한다. 다른 환자들도 이왕이면 같이 퇴원하자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입원은 장기화하기 쉽다. 퇴원하더라도 '외래'를 통해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퇴원해야 한다.
외환위기가 우리의 '실화(失火)'였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옮겨 붙은 불'이다. '지병'으로 인한 입원과 '교통사고'로 인한 입원을 구분해야 할 일차적 이유다. 올해 성장률은 플러스 0%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초기의 마이너스 2% 전망치를 감안하면 선방한 것이다. 수년간에 걸쳐 축적된 거품이 소멸되는 과정에 있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 회복 과정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출구전략의 시기상조론을 피력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신중론'은 대세를 이룬다. 먼저 민간 부문이 출구전략을 꺼리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이 거둬들여졌을 때 느끼는 한기(寒氣) 때문일 터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출구전략은 '국가 개입의 끈'을 놓는 것이기 때문에 소극적이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요인에 대한 논쟁에서 '국가 개입주의'가 강화된 것도 신중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렇듯 신중론은 '구조적'이다. 의견이 쏠리면 합리적인 정책 선택은 어려워진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5% 내외로 보고 있다. 5% 성장률 전망치는 세계경제 환경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5% 성장률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기상조론'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출구전략 유보의 구체적 상황 논거로 국제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 두바이발(發) 악재가 지목되고 있다. 두바이 정부 소유 최대 지주회사인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 연장을 요청한 사실이 공지되면서 글로벌 증시에 연쇄적인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하지만 '모라토리엄'이 미친 금융시장의 쇼크는 빠르게 진정되고 있다. 파급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두바이 사태는 '과다 차입에 의한 거품'에서 비롯된 것이기에,출구전략을 지지하는 사례인 것이다. 출구전략은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의 시행은 고도의 정책의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출구전략의 때를 놓치면 더 큰 '기회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출구전략 유보는 '구조조정'의 지체를 의미한다. 그동안 중소기업 대출은 '신속조치'에 의해 거의 대부분 전액 만기 연장이 이뤄졌다. 구제금융은 '좀비 기업'들을 존속시켜 이들 기업으로 하여금 경제 내의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건실한 기업들의 자원 사용 비용을 증가시켰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도 상당 부분 저금리 정책에 기인한다. 저금리로 가계부채가 쌓이면 금리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
출구전략은 군사용어이기에 그 자체로 강박관념을 갖기 쉽다. 마치 국가가 책임을 포기하고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비쳐지기 쉽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경제위기를 추스르고 정상적인 모드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출구전략의 유보를 강조하면 오히려 "경제위기를 지렛대로 국가 개입을 상시화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국제공조도 정책이 일시에 시행되는 '정책 동시화'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공조에 함몰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출구전략을 통해 우리 경제는 한층 더 견실해질 수 있다. 출구전략에 대한 유연한 정책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