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표리부동 '노사정 논의'

노 · 사 · 정은 언제까지 속내를 감춘 채 복수노조 및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와 관련해 가면극을 벌일 것인가. 지난 25일 끝난 노 · 사 · 정 6자회의 논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 · 사 · 정의 수준이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동계는 속으로 복수노조로 인한 조직 분열을 우려하지만 겉으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도 교섭창구를 노사 자율에 맡기라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재계 역시 속으론 노노 및 노사갈등을 우려하며 복수노조에 껄끄러운 반응이고 전임자 임금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 석상에서는 교섭창구만 단일화된다면 복수노조 허용도 못할 게 없고 전임자 임금에 대해선 완전 금지해야 한다며 태도가 달라진다.

정부도 가면극을 즐기긴 마찬가지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조항의 밑그림을 위임받은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이 지난 7월 말 확정됐지만 시행 한 달을 남겨둔 지금까지도 정부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뒤늦게나마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연착륙 방안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을 뿐이다. 복수노조와 관련,정부는 과반수 대표가 없을 경우 비례대표제 형식인 공동교섭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임자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타임오프제에다가 기업 규모별 단계적 시행과 재정 지원 등을 보완책으로 논의하고 있다. 정부의 방향이 뒤늦게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제도가 법개정 사항인지,아닌지에 대해선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새 노동법 시행 방안이 막판 혼선을 빚는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노사의 반대로 13년 동안 시행이 유예된 핵심 이슈다. 2006년 노 · 사 · 정 합의를 통해 또다시 3년간 시행이 유예됐을 때 "혼란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허송세월을 보냈을 뿐이다.

정부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시행할 대의명분이 있다. 2007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정부를 노사관계 감시 대상 국가에서 졸업시킬 때 개별사업장 복수노조도 허용하라는 전제를 달았다. 정부가 노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재계는 복수노조를 껄끄러워 하면서도 시행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대놓고 반대를 못한다. 전임자 문제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한 제도인 만큼 노조의 반대 명분이 약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행태를 보면 무언가 007작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비밀스럽고 전략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이다.

정부가 좀 더 설득력 있고 당당하게 접근했으면 한다. 복수노조의 경우 어느 정도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노사에도 혼란을 최소화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노사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노사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노조 난립을 막기 위한 노조설립 요건 강화,교섭단위 설정 등의 연착륙 방안을 함께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가 마지막까지 열린 자세를 갖고 성의있고 진지하게 새 노동법 시행을 추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