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重, 국내 첫 크루즈선 건조시대 열었다

美 선사서 11억달러 규모 수주
13년간 여객선 8척 건조·기술 축적…주상복합 노하우도 선박에 접목
삼성중공업이 유럽 조선업체들이 독무대를 이뤄온 크루즈선 건조사업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미국 크루즈선사인 유토피아의 11억달러 규모 크루즈선(10만t급) 건조 입찰에서 단독 계약대상자로 선정됐다고 30일 발표했다. 유토피아와 함께 기본 설계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에 본 계약을 체결한다. 선박은 2013년에 인도할 예정이다. 국내 조선소에서 크루즈선을 건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선박은 '아파트형' 크루즈선이다. 각 국을 돌아다니는 일반 크루즈선과 달리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이벤트가 열리는 국가에 수개월 간 정박하며 휴양할 수 있게 해주는 선박이다. 호텔형 객실 204실과 132(40평)~594㎡(180평)대의 아파트 200개실을 갖춘다. 아파트에는 2~3개의 침실과 주방,거실,바 등이 설치된다. 거주자가 일반 크루즈선(3000명)보다 적은 900명 수준이어서 보다 쾌적한 휴양이 가능하다.

◆13년 기다림끝에 '꿈'을 이루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1997년 초 조선부문 대표로 취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 조선업체들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었지만 10년 뒤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가 추격해올 때에 대한 대안이 없어서였다. 그는 일본보다 앞서 세계를 석권했던 유럽 조선소들의 변화를 살펴봤다. 결론은 크루즈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개발하는 것.김 부회장은 즉시 10명 규모의 여객선 개발팀을 꾸린 뒤 크루즈선 개발에 나섰다. 그로부터 13년 뒤 삼성중공업 여객선 개발팀은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그동안 회사 내 상선 부문이 수백 척의 배를 건조할 때 달랑 여객선 8척을 만들어가며 회사 내에서 온갖 눈칫밥을 먹은 끝에 일군 개가였다. ◆'수주 제로' 크루즈선 새 역사 쓴다

국내 조선소는 LNG(액화천연가스)선,벌크선 등 상선 건조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조선 전문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위권 조선소 중 국내 업체가 7곳에 달할 정도다. 합계 점유율이 40%에 이른다. 하지만 크루즈선 분야는 얘기가 다르다. 올해 크루즈선 국가별 시장 점유율은 이탈리아 41%,독일 31% 등 EU국가가 100%를 차지하고 있다. STX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STX유럽이 크루즈선을 짓고 있지만 유럽 현지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다.

국내 조선소가 크루즈선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배를 물 위에 뜨게 하는 기술과 내부에 사람이 거주하는 편의시설을 짓는 기술 두 분야를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세계 1위 조선소였던 미쓰비시중공업은 크루즈선 건조에 나섰지만 건조비용이 많이 들어가 한 척당 수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내부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유럽 승객들의 취향에 맞추려다 비용이 많이 들어갔던 것.크루즈선 조선사가 대부분 유럽지역에 있어 인테리어 자재를 유럽에서 직접 공수해와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크루즈선은 조선업계의 미래

삼성중공업은 미쓰비시와 달리 서두르지 않고 크루즈선 전 단계인 대형 여객선을 건조하면서 기술을 축적했다. 2000년에는 국내 인테리어 업체들과 'in-TEC'이라는 기술협력위원회를 구성해 기자재를 국산화했다. 주상복합아파트인 타워팰리스,쉐르빌 등을 지으며 축적한 노하우도 선박에 접목했다.

유토피아가 발주한 크루즈선은 10일 안팎의 단기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리조트형'과 달리,장기 휴양 목적의 '해상 별장'으로 개인에게 객실을 분양하는 형태다. 리조트형은 나이트클럽,카지노 등 승객들의 공동구역을 건설하는 기술이 중요한 반면 아파트형은 객실을 만드는 기술력이 더 중요하다. 객실 제작 기술에 자신이 있었던 삼성중공업은 유토피아의 경영진을 거제조선소로 초청해 설득했고,국내 조선소 최초로 크루즈선 수주에 성공했다. '떠다니는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선은 가격이 비싸다. LNG선이 평균 척당 2000억원인 데 비해 크루즈선은 척당 1조원을 넘나든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