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마천루 경쟁 거품 아닌가

두바이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3년반 전이다. 세계 타워크레인의 15%가량이 몰려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온통 공사판으로 뒤덮였던 두바이는 경외감을 자아냈다.

야자수를 본뜬 인공섬 팜 아일랜드,세계지도를 축소한 인공섬 더월드,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세계최고급 호텔 버즈 알아랍 등등….척박하기 그지없는 사막 위에 펼쳐진 도전과 상상력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다. 세계 각국이 왜 벤치마킹에 여념이 없는지 한 눈에 드러났다. 하지만 우려 또한 동시에 가슴을 짓눌렀다.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사실은 버블(거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요가 제대로 따라줄 것인지, 빚을 얻어 공사를 해도 충분히 수익을 남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자원이래야 사막과 바다뿐이고, 관광객들을 유혹할 만큼 뛰어난 역사적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결국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이 됐다. 팜 아일랜드 등의 건설을 추진했던 두바이월드가 끝내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상환 유예를 요청했다. 두바이 또한 신뢰도가 추락해 형님 격인 아부다비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사막을 금싸라기 땅으로 바꿨다는 두바이 신화가 하루 아침에 신기루로 변했다.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키 위해 끌어들인 막대한 외자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낙관과 과욕에 근거한 대규모 개발 계획이, 빚이, 버블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상황도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개발 열기에 관한 한 두바이에 결코 뒤질 게 없는 까닭이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라는 28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 송도국제업무지구,상암DMC단지 등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을 잇는다. 입주할 기업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자금조달 계획은 확실하고 수지타산은 맞출 수 있는지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업이 상당폭 진행된 송도국제업무지구가 아직도 그럴 듯한 외국기업 하나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더욱 걱정이다.

특히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은 마치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우선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랜드마크타워가 150층 665m 높이로 건설될 예정이고 상암에서는 서울DMC랜드마크빌딩(133층 · 640m)이 얼마 전 기공식을 가졌다. 잠실 제2롯데월드(112층 · 555m)도 건설 예정이고 현대기아차 그룹 또한 뚝섬에 초고층 사옥(110층 · 550m)을 지을 계획이다. 게다가 송도지구에는 인천타워(151층 · 610m), 청라지구에는 시티타워(110층 · 450m), 부산에선 부산롯데월드(130층)가 추진되는 등 건설 예정인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만도 10개가량에 이른다.

지역 랜드마크를 지향하며 야심차게 추진되는 마천루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활력을 상징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성 측면에선 문제가 적지 않다. 높이 올릴수록 단위비용이 늘어나는 건설비 때문만은 아니다. 단시일 내에 집중적으로 공급이 이뤄져 공급초과로 기울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모두가 부러워할 건물을 지어놓고도 수요 부족으로 내부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초고층빌딩은 경기호황기에 건설되기 시작하지만 완공 시점엔 버블이 꺼지면서 불황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실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수많은 마천루들이 완공 직후 입주 부진 등으로 큰 애로를 겪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현 경기 상황에서는 물론이지만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도 지금 건설 예정인 초고층빌딩들의 내부를 다 채우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잇단 마천루 건설 계획이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 경제성은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철저히 재점검해봐야 할 시점이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