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섹스& 더 시티] 그녀는 오늘도 男子 탐구생활중

토요일 오후 6시 강남역 6번출구 앞 스타벅스.이정연씨(31 · 제약회사)는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건다. "어디 계세요?" 구석에 서 있던 말쑥한 차림의 30대 남성이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씨의 소개팅 상대다. 둘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손님 대부분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소개팅을 하는 것 같다.

스파게티를 먹으며 본격적인 소개팅이 시작됐다. 끊임없는 탐색전이 이어진다. "아버님은 현직에 계신가요? 퇴직한 뒤에는 뭐하고 지내시나요?" "요즘 맞벌이가 대세인데 정연씨는 결혼 후에도 회사를 다닐 건가요?" 식사 후 커피를 마신 뒤 9시께 헤어졌지만 상대방은 이씨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고만 했다. 눈치를 보니 '애프터'를 신청할 것 같지 않다. 이씨는 귀가길에 집앞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샀다. ◆"주말엔 하루 두 건씩 하죠"

이씨는 한 달에 두세 번꼴로 꾸준히 소개팅을 한다. 소개팅이 몰릴 경우에는 하루 두 번 나갈 때도 있다. 소개팅은 2~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것을 살핀다. 상대방이 입고 있는 옷과 구두 브랜드,시계,가방 등을 힐끔힐끔 살핀다. 좋은 브랜드이면 상대 남성의 점수가 올라간다. 키높이 구두를 신었는지 감별해내는 노하우도 생겼다. 상대가 강남권에 살면 호감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내가 20대였다면 사람 하나만 보고 사귀겠지만 결혼할 나이가 되니 현실적으로 변한다"며 "솔직히 누구나 경제력과 성격,외모가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심해지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괜찮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섣불리 교제 결정을 못하고 재기만 하다 놓친 경우도 많습니다. "김지은씨(35 · 대기업 근무)는 맞선 보러 나갈 때마다 외모 가꾸기에 10만원 이상을 쓴다. 김씨는 "마담뚜를 통해 만나는 경우 남자 쪽에서 '(외모가) 괜찮더라'는 평가가 나오면 그 다음부터 소개시켜 주는 남자의 레벨(등급)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 손질도 한다.

◆직장에서 소개팅 성토대회도 열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최연주씨(29)는 매주 월요일마다 여직원들끼리 모여 '소개팅 성토대회'를 연다. 주말에 소개팅을 하는 미혼 여성들이 많다 보니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것.최씨가 며칠 전 소개팅한 남성이 면바지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왔다고 하자,한 선배는 "혹시 탈모일 수 있으니 모자를 벗은 모습을 꼭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청춘 남녀들이 결혼에 이르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소개팅과 맞선이다. 서로의 신상명세 정도만 아는 상태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며 '배우자감으로 괜찮을까' 속으로 저울질한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애프터를 신청해 몇 번 더 만난 뒤 정식으로 사귄다. 만약 상대가 별로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소개팅에서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두어 시간 동안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상대의 진면목을 알아내기 어렵다. 가치관은 어떤지,어떤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는지,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나이,직업,거주지,외모,가족관계 등 피상적인 조건으로만 판단을 내리게 된다.

◆소개팅 · 맞선의 경제학종업원이 손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다니는 호텔 커피숍에서의 맞선은 옛날 얘기다. 대신 레스토랑들은 소개팅 손님들이 몰리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개팅 손님은 비교적 비싼 메뉴를 주문하는 데다 식사만 하고 간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 '귀빈'으로 통한다. 강남역의 소개팅 명소로 꼽히는 '노리타까사'는 주말엔 테이블 46개 중 절반이 소개팅 손님이다.

새로운 곳이 부상하기도 한다. 광화문에 있는 오피스빌딩 '서울파이낸스센터'의 지하 아케이드가 대표적이다. 레스토랑 17곳,커피숍 8곳이 있어 메뉴 선택폭이 넓고 도심이어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레더라스위스 초콜릿카페'의 오경미 점장은 "지난여름부터는 주말 매출이 평일의 80% 정도까지 오른다"며 "강남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소개팅 손님도 많다"고 설명했다.

소개팅에 나가는 여성을 겨냥한 명품 대여점도 재미를 보고 있다. 역삼동,논현동에 20여곳이 성업 중이다. 압구정동에 있는 일부 중고 명품숍에서는 명품 핸드백을 빌려주기도 한다.

◆ 안정적인 직업 각광

소개팅이나 맞선에서 미혼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은 무엇일까.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노블레스 등급 여성 회원들은 배우자의 직업으로 의사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변호사 선호도는 조금 낮아진 반면 정부 부처 사무관들의 인기가 올라갔다. 정지은 노블레스팀장은 "경제 불황 여파로 국책은행이나 공사 등 안정적인 직업이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남자)'의 인기도 뚝 떨어졌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자수성가한 전문직 남성을 선호했지만 요즘은 집안 환경이 좋은 회사원이 더 인기다. 결혼을 통해 소위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도 줄고 있다. 여성들의 학력,직업,수입 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사실 소개팅은 인위적인 만남이다. 상대의 프로필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없이 선을 긋는다. 그러다 보니 청춘 남녀들은 주말이면 습관처럼 소개팅을 하고,이상형에 대한 기준치는 점점 높아져 간다.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사람은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성장한다"며 "이상형을 정해 놓고 그런 대상을 찾다 보면 좌절과 실망만 얻을 수 있고,그럴수록 이상형에 대한 집착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상대가 나의 이상형이 아닐지라도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인생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김정은 기자/김기정 인턴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