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우즈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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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중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성(性) 파트너가 1 대 1이어야 한다는 도덕 기준을 따르는 것이 적어도 본능과는 합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회생물학자 데이비드 버래시도 정신과의사인 아내와 함께 쓴 '일부일처제의 신화'라는 책에서 사회적 일부일처와 생물학적 일부일처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일처형 조류들의 새끼 중 10~40%가 혼외 수컷의 자식이었음을 DNA 지문 분석으로 밝혀냈다.
4000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에서 일부일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건 일부 박쥐와 비단원숭이 등 10여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의 성인 여성 4분의 1이 외도 경험이 있다는 1953년 킨제이 보고서도 '본능의 힘'을 도덕으로 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불륜 영화나 드라마가 줄기차게 만들어지는 것도 다 까닭이 있는 셈이다. 굳이 인류학이나 생물학을 들먹일 것도 없다. 남녀가 만나 평생 일탈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짜릿한 감정은 잠시뿐이어서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없으면 어느새 틈이 생겨 딴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탓이다. 아내가 남편을 자신의 남자로 키우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다른 여자가 그를 멍청이로 만드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하다는 농담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요즘에는 남자든 여자든 '샛길'로 빠질 수 있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현직 장관이 친자소송 시비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이번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외도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즈가 "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진심으로 일탈을 후회한다"고 고백했지만 '제3의 여인'이 나타나면서 파문은 더 확산될 조짐이다.
본능이야 어떻든 인간 사회의 규범은 예나 지금이나 '외도 금지'다. 그렇다면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한 인류학자가 원주민 사회를 관찰한 끝에 얻어낸 다음과 같은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많은 시간을 붙어지내는 부부일수록 외도가 적었다. '막심 고리키도 "부부는 쇠사슬에 함께 묶인 죄인이다. 그래서 발을 맞춰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가능하면 자주 접촉하고,그게 어려우면 서로의 마음을 붙잡아 두도록 노력하고 인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4000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에서 일부일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건 일부 박쥐와 비단원숭이 등 10여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의 성인 여성 4분의 1이 외도 경험이 있다는 1953년 킨제이 보고서도 '본능의 힘'을 도덕으로 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불륜 영화나 드라마가 줄기차게 만들어지는 것도 다 까닭이 있는 셈이다. 굳이 인류학이나 생물학을 들먹일 것도 없다. 남녀가 만나 평생 일탈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짜릿한 감정은 잠시뿐이어서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없으면 어느새 틈이 생겨 딴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탓이다. 아내가 남편을 자신의 남자로 키우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다른 여자가 그를 멍청이로 만드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하다는 농담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요즘에는 남자든 여자든 '샛길'로 빠질 수 있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현직 장관이 친자소송 시비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이번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외도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즈가 "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진심으로 일탈을 후회한다"고 고백했지만 '제3의 여인'이 나타나면서 파문은 더 확산될 조짐이다.
본능이야 어떻든 인간 사회의 규범은 예나 지금이나 '외도 금지'다. 그렇다면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한 인류학자가 원주민 사회를 관찰한 끝에 얻어낸 다음과 같은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많은 시간을 붙어지내는 부부일수록 외도가 적었다. '막심 고리키도 "부부는 쇠사슬에 함께 묶인 죄인이다. 그래서 발을 맞춰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가능하면 자주 접촉하고,그게 어려우면 서로의 마음을 붙잡아 두도록 노력하고 인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