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석유기업 쉐브론이 패션티셔츠를 파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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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하이브리드 경영''존디어'는 172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유명한 농기계 회사다. 그런데 국내 검색포털에서 '존디어'를 치면 G마켓 존디어, 11번가 존디어, 옥션 존디어 등의 쇼핑몰 사이트 링크가 줄줄이 뜬다. 인터넷으로 트랙터를 구입하라는 얘기? 아니다. 사슴 로고가 새겨진 '존디어' 야구모자를 판다는 광고다. 존디어 야구모자는 할리우드 유명배우인 애시튼 커처와 조지 클루니 등이 애용하면서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이 모자는 국내에서도 모델 배정남과 연예인 하하 등이 착용해 유명세를 탔다. 또한 유럽의 나이트클럽에선 존디어 녹색 티셔츠를 입고 무대를 누비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패션'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장비업체는 존디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건설기계 회사인 캐터필러는 'CAT'라는 로고가 새겨진 신발로 유명하다. 굴착기를 만드는 JCB도 의류에서 장난감까지 자신들의 '간판'을 달아 판매한다. 석유회사 셰브론의 티셔츠도 적잖은 마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 고객과 공유"
농기계업체가 단순 판촉용을 뛰어넘어 자체 브랜드 모자를 만들어 파는 이유는 뭘까. 고객들의 브랜드 로열티를 높일 수 있고 일반 대중에 브랜드 노출기회가 적은 업종의 한계를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명세를 타면 짭짤한 부수입도 생긴다. 어떤 경우엔 고객들이 먼저 로고가 새겨진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없느냐고 요구하기도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옥수수밭에서 할리우드'로 라는 기사에서 일반 소비자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중장비업체들이 자신들 로고를 내건 '의류'사업을 통해 브랜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존디어가 처음부터 모자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존디어의 제프리 그레드비그 브랜드 라이선싱 담당 이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단순 판촉용으로 제작한 모자와 티셔츠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갖게 해주는 수단이 됐다"며 "처음에는 판매상들이 원하더니 일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점점 늘어났다"고 말했다. 걸프석유와 텍사코 등을 합병해 덩치를 키워 온 셰브론은 다양한 브랜드의 옛 로고가 새겨진 상품으로 고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캐터필러는 브랜드 홍보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게차 등을 만드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10억달러.이 중 약 10억달러는 의류 신발 장난감 등 라이선스 제품 판매에서 나왔다. 리테일 프로그램 매니저인 마크 조스테스는 "상하이와 두바이 등엔 캐터필러 제품을 파는 복합매장이 들어서 있다"며 "캐터필러 안경은 남아프리카에서 꽤 많이 팔리고 시계는 캐러비안 국가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캐터필러는 의류 · 신발제품의 높은 인지도를 등에 업고 브랜드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실시한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 조사'에서 6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캐터필러의 부츠를 신던 고객이 부츠와 관련해 회사로부터 받은 서비스에 감동받아 고가의 중장비를 구입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리타 클리프튼 인터브랜드 회장은 "유명 중장비업체들의 제품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클리프튼 회장은 "이들 브랜드는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에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패션 브랜드와는 다르며 어느 정도 유행을 반영할 순 있지만 절대 유행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들이 다 따라하는 유행을 '무시'하는 듯한 이들 브랜드의 제품 이미지가 오히려 개성을 존중하는 패셔니스타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품 품질관리가 관건
중장비업체들은 옷이나 모자 장난감 등을 직접 생산하진 않는다. 대신 의류나 장난감 회사에 라이선스를 준다. 따라서 엄격한 품질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칫 엉성한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단 제품을 팔았다가는 주력제품의 명성마저 훼손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라이선싱하는 제품의 종류도 선별해야 한다. 뭔가 브랜드 이미지와 안 어울리는 제품에 로고를 붙일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선싱할 품목을 신중하게 골라도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일례로 오프로드 자동차의 대명사 '허머(Hummer)'브랜드 향수는 영국에서 '험(hum)'이 좋지 않은 몸냄새를 뜻하는 속어로 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킥킥거리는 대상이 됐다.
수요가 있더라도 본격적인 라이선스 제품 판매를 꺼리는 기업들도 많다. 미국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페이스북'에는 덴마크 컨테이너 해운사 머스크의 하얀별 로고를 추종하는 팬그룹이 있다. 여기에 가장 흔한 포스팅 중 하나는 "머스크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그러나 로고 티셔츠는 회사 내부용으로만 구할 수 있을 뿐 판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이 사람들의 더 큰 관심을 끄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