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과 세종시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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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 속에서도 커지는 민간 경제를 억압해 권력 승계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북한을 보면 이제 붕괴의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그런데 북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자율과 책임,그리고 진화에 맡기지 않고 짧은 이성으로 설계하고 계획해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는 오만에 있다. 이는 북한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원인으로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종시 문제를 잘 들여다보면 북한 문제와 내용이 닮았다. 지난 정부를 좌파라고 하는 이유와도 닿아 있다. 세종시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 갈 도시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수도 이전을 약속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이른바 기득권층을 해체할 목적을 더해 천도 실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자 천도 안을 일부 수정해 오늘의 세종시라는 기이한 모양새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한 세종시에 대해 현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하자 이를 둘러싼 각 주체들 간 논란이 극심하다. 정치인들은 내년 초 지방선거와 다음 대통령 선거 때의 표 계산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했다. 충청지역민들 역시 원안 수정 시 기대되는 유형의 불이익은 물론,자존심 손상이라는 무형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한 타 지역민들은 세종시에 집중되는 중앙정부의 지원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도시는 오랜 역사에 걸쳐 사람들이 산 따라 강 따라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면서 형성되고 인구가 늘며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시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 의도에 따라 인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는 점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그대로 두고 나머지 단추를 잘 채울 수는 없다. 첫 단추를 풀어 다시 순서대로 채우는 것이 바른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 · 지역적 이해가 얽혀 푸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데 세종시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다른 방법은 입법 · 사법 · 행정부가 모두 이전해 가는 것이지만,이는 이미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기업,학교,연구소 등이 이전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단기적으로는 도시 모양을 갖출 수 있겠지만,우연에 가까운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세종시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앞날이 밝을 것 같지 않다.
4대강 사업은 북한과 세종시 문제와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앞의 두 사안이 인위적 설계를 바탕으로 해서 빚어진 것이라면, 4대강 사업은 이미 흐르고 있는 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대강 정비 사업에도 오만은 금물이다. 강은 장구한 시간을 흐르면서 오늘의 물길을 형성했고,그러한 물길이 만들어진 데에는 우리들이 잘 모르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직선으로 바로잡기 위해 면밀한 조사 없이 바꾸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 흐름의 완급을 조절하는 물밑의 지형 사정을 우리가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의 한계를 넘어 거대 사회를 함부로 설계하고 계획하려는 오만을 경계할 줄 안다면 수많은 백성을 굶겨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라 전체를 진퇴유곡의 어려움으로 몰아가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와 세종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
세종시 문제를 잘 들여다보면 북한 문제와 내용이 닮았다. 지난 정부를 좌파라고 하는 이유와도 닿아 있다. 세종시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 갈 도시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수도 이전을 약속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이른바 기득권층을 해체할 목적을 더해 천도 실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자 천도 안을 일부 수정해 오늘의 세종시라는 기이한 모양새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한 세종시에 대해 현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하자 이를 둘러싼 각 주체들 간 논란이 극심하다. 정치인들은 내년 초 지방선거와 다음 대통령 선거 때의 표 계산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했다. 충청지역민들 역시 원안 수정 시 기대되는 유형의 불이익은 물론,자존심 손상이라는 무형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한 타 지역민들은 세종시에 집중되는 중앙정부의 지원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도시는 오랜 역사에 걸쳐 사람들이 산 따라 강 따라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면서 형성되고 인구가 늘며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시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 의도에 따라 인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는 점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그대로 두고 나머지 단추를 잘 채울 수는 없다. 첫 단추를 풀어 다시 순서대로 채우는 것이 바른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 · 지역적 이해가 얽혀 푸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데 세종시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다른 방법은 입법 · 사법 · 행정부가 모두 이전해 가는 것이지만,이는 이미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기업,학교,연구소 등이 이전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단기적으로는 도시 모양을 갖출 수 있겠지만,우연에 가까운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세종시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앞날이 밝을 것 같지 않다.
4대강 사업은 북한과 세종시 문제와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앞의 두 사안이 인위적 설계를 바탕으로 해서 빚어진 것이라면, 4대강 사업은 이미 흐르고 있는 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대강 정비 사업에도 오만은 금물이다. 강은 장구한 시간을 흐르면서 오늘의 물길을 형성했고,그러한 물길이 만들어진 데에는 우리들이 잘 모르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직선으로 바로잡기 위해 면밀한 조사 없이 바꾸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 흐름의 완급을 조절하는 물밑의 지형 사정을 우리가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의 한계를 넘어 거대 사회를 함부로 설계하고 계획하려는 오만을 경계할 줄 안다면 수많은 백성을 굶겨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라 전체를 진퇴유곡의 어려움으로 몰아가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와 세종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