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JAL, 감쌀수록 추락한다

일본 최대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이 수년째 경영난에 허덕인다는 소식은 이미 구문이 된 지 오래다. JAL은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 적자가 1300억엔(약 1조7000억원)을 웃돌았으며 경영 성적이 너무 나빠 올 연간 실적전망마저 내놓지 못했다.

또 세계 최대 항공사인 델타항공을 비롯한 외국 항공사들이 JAL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지금으로서 JAL의 경영진과 일본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실수를 정확히 짚어낸 뒤 회생을 위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선 지나치게 높은 근로자 연봉과 퇴직연금,얽히고 설킨 자회사 구조 등 JAL 자체의 방만경영이 지금의 부진을 낳은 첫번째 요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JAL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조건적이고 도를 넘어선 지원이다. 1987년 JAL이 민영화된 후 일본 정부는 JAL에 대한 직접적인 자금 투입은 줄여왔다. 하지만 외국 항공사의 운항 점유율 제한과 일본 내 중소 저가항공 출범 규제 등 각종 정책적 비호가 계속되면서 JAL은 아시아 제일의 항공사로 군림할 수 있었다.

정부가 이렇게 JAL을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동안 말레이시아항공과 에어뉴질랜드,호주 콴타스 등 아시아의 다른 경쟁사들은 경영효율성 제고에 박차를 가하면서 자체 생존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JAL은 자생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속으로 곪아들어가며 천문학적 부채와 적자만 키워나갔다.

이제 일본 정부는 더 이상 JAL을 지켜줄 수 없다. JAL의 회생을 위해 지금 당장은 일본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하지만 언제까지 정부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 JAL 스스로 수천명을 정리해고해야 하고 연봉과 퇴직연금도 줄여야 한다. JAL의 구조조정은 일본에서 가장 민감한 정치 ·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JAL을 감싸줄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JAL을 다시 태어날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JAL을 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JAL이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도록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양국 간 항공서비스 개방을 위해 진행 중인 '오픈 스카이' 협상은 JAL이 자체 경쟁력을 기르는 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JAL 경영진과 일본 정부가 자유 경쟁체제 진입에 얼마나 굳은 의지를 갖고 실천하느냐가 앞으로 JAL 회생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역사는 관료와 경영진의 지나친 유착이 어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왔다. JAL도 민영화 이후 수차례 일본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자금을 받으며 연명했지만 결국 경영엔 아무런 도움이 돼 주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에도 또다시 JAL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준다면 결국 뼈아픈 구조조정을 눈앞에 둔 JAL의 결단 시기만 늦출 뿐이다.

피터 하비슨 < 아태항공센터 회장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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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피터 하비슨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 회장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JAL을 벼랑 끝에서 구해내기'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