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新산업대전] (5)·끝…군살빼고 엔고 체질로 '리빌딩'…日 기업 '파이터 본능' 되찾다

(5) 끝…열도의 역공 시작됐다

뼈깎는 구조조정
도요타, 올 1천억엔 비용 절감
파나소닉 등 전자회사도 흑자로

반격 카드는
브릭스·베트남 신흥시장 주력
車·가전 친환경 제품 공세 강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모토마치 공장 생산관리부 사무실.입구 한쪽에 몽당연필을 모으는 상자가 있다. 여기 모인 몽당연필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볼펜대에 끼워져 직원들에게 다시 지급된다. 조립라인의 종업원들은 한 번 끼고 더러워지면 버리던 작업용 목장갑을 지금은 빨아 쓰고 있다. 화장실의 손 말리는 에어 드라이어는 모두 코드가 뽑혔고,대신 수건이 내걸렸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에 몽당연필까지 등장한 건 작년 말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달러당 106엔대이던 엔화가치가 80엔대로 급등하자 긴급 수익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마른 수건도 쥐어짜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이런 노력으로 올해만 1000억엔(약 1조30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절감했다. 덕분에 지난 3분기(7~9월) 살인적인 엔고(高) 상황에서도 218억엔(약 283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3분기 연속 적자를 냈던 도요타가 올해 첫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동시불황에 엔고까지 겹쳐 휘청거리던 일본 기업들이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다. 1년간 대규모 감원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엔고 극복을 위한 비용절감을 통해 전열을 빠르게 재정비하고 전선으로 복귀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하야시 야스오 이사장은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 달러당 80엔에도 버텼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원래부터 강한 기술 경쟁력에 위기를 거치며 더욱 단련된 체력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들이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구조조정 완료…"이제 반격이다"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지난달 19일 도쿄 본사에서 예정에 없던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회견에서 "작년 '리먼 쇼크'직후 에너지가 부족했지만 이제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며 "2012년까지 액정표시장치(LCD) TV 세계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려 삼성전자에 뺏긴 1위 자리를 탈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기업들의 자신감 회복엔 최근 실적 호전이 크게 작용했다. 혼다와 닛산자동차는 3분기 중 각각 540억엔과 255억엔의 순익을 기록하며 '적자 늪'에서 탈출했다. 전자회사들도 잇따라 올해 흑자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파나소닉이 1200억엔 영업이익을 내다보고 있고,도시바(1000억엔) 후지쓰(900억엔) 히타치(800억엔) 미쓰비시전기(600억엔) NEC(600억엔) 샤프(500억엔) 등도 모두 흑자를 낼 전망이다. 주요 일본 기업들의 흑자 전환은 구조조정이 완료됐다는 의미다. 일본 기업이 작년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은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 등을 위한 구조조정 비용 탓이 컸다. LG전자 일본법인 관계자는 "소니 등 9개 전자업체의 지난해 적자 1조9000억엔 중 영업부진으로 인한 적자는 600억엔뿐이었다"며 "나머지는 모두 명예퇴직금 등 구조조정 비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건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들이 군살을 빼고 근육질로 몸을 바꾼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건 한국 기업 등에 빼앗긴 시장을 되찾는 일이다.

◆역공 포인트는 신흥국 · 친환경

역습을 시작한 일본 기업들의 타깃은 신흥국과 친환경 제품이다. 일본 산업계의 실질적 '사령탑'인 경제산업부는 2009년 통상백서에서 아시아 신흥시장 개척을 강조했다. "세대당 연간 소득이 5000~3만5000달러(약 580만~4025만원)인 중산층이 중국 4억4000만명,인도 2억1000만명을 포함해 아시아 전체에서 8억8000만명에 달한다"며 이들을 일본 기업에 목표시장으로 제시했다. 그동안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만 집중하다 신흥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추월당했다는 분석에서다. 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인다. 닛산자동차는 2012년까지의 중기 경영계획인 '닛산GT 2012'를 통해 대당 30만엔(약 390만원)에 불과한 초저가 자동차를 내년 초 태국과 인도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파나소닉도 중 · 장기 경영계획에서 브릭스(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와 베트남을 전략 시장으로 규정했다. 앞으로 3년간 인도에만 3억달러(약 3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친환경 제품도 일본 기업들의 주무기다.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 샤프 파나소닉 등의 태양전지와 절전형 가전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정부가 올해 환경차와 에너지절약형 가전에 보조금을 줘가며 관련 시장을 키운 것도 기업들이 질주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것이다. 그게 한국 등 경쟁국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란 판단에서다.

삼성재팬 관계자는 "지난 3분기 삼성전자의 이익이 일본 전자회사 9개사를 합친 것 보다 많다고 하지만 솔직히 환율 덕(원화가치가 떨어져 일본 제품보다 가격이 싸진 것)이 컸다"며 "앞으론 친환경 기술에 강한 일본 기업이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TV 휴대폰 등 일부 품목에서 한국 기업에 뒤지면서 자존심이 상한 일본 기업들이 해외생산 확대로 엔고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면 무섭게 추격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