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상사의 '필리핀 매직'…폐쇄직전 鑛山을 노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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濠洲도 손들고 나온 '라푸라푸', 銅·아연 등 5만 t 이상 생산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LG상사 본사 14층.경영진은 필리핀 라푸라푸(Rapu Rapu) 동(銅)광산 처리를 놓고 마지막 숙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광산 운영권자인 호주 라파예트사가 적자를 못 이기고 2007년 12월 파산을 선언하자 당시 15.6%의 지분을 갖고 있던 LG상사는 포기냐 재투자냐의 선택을 해야 했다. 난상토론 끝에 구본준 부회장은 초기 투자 대비 3배 규모로 지분을 확대해 최대주주(42%)로서 광산을 직접 운영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년 5월 라푸라푸 경영을 시작한 LG상사는 호주의 '프로'들도 손 들고 나온 광산을 1년 6개월여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구본준 부회장 "직접 운영해보자"
추가투자로 운영권 확보, 1년반만에 흑자전환 결실
LG상사가 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구리 등 비철광산을 직접 운영하는 기업은 LG상사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유연탄,원유까지 합하면 이 회사가 최대주주로 운영권을 갖고 있는 해외 광구가 5개에 달한다. ◆오너십의 과감한 결단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375㎞,밀림으로 뒤덮인 라푸라푸섬 지면 아래는 구리,아연,금,은 등 값비싼 광물로 가득하다. LG상사가 맡은 해변가 노천 광산은 향후 5년간 채굴이 가능한 곳으로 매년 동정광 3.3만t,아연정광 2.3만t을 생산한다. 금이 섞여 있는 암석들도 지천에 깔려 있다.
박영태 KMP(라푸라푸 광산 법인명) 법인장은 "필리핀 안에서도 이런 복합 광산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확인된 매장량에서만 약 4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고,섬 전체 채굴권까지 포함하면 매출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LG상사가 이 섬에 주목한 이유다. 2004년 초기 투자 때 LG상사도 여느 자원개발회사처럼 지분만큼 자원을 받아 매매하는 데만 주력했다. 비철광산을 운영해 본 경험이 전무해서였다. 그러다 2007년 말 상황이 급변했다. 호주 라파예트사가 선물 투자 실수로 파산한 것.잘못된 환경 관리로 폐수가 바다로 흘러가 광산권까지 박탈당했다.
작년 5월 LG상사 직원 4명이 라푸라푸섬에 들어갔을 때 광산은 곳곳이 상처 투성이었다. 수백억원어치의 동,아연을 저장할 대형 창고조차 곳곳에서 빗물이 샜고,해풍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커다란 돌멩이 형태의 정광을 잘게 부수는 파쇄기를 다시 돌리자 낡은 부품 탓인지 멈추기 일쑤였다. 박 법인장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900여명의 필리핀 현지 근로자들이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것"이라며 "일종의 무정부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라푸라푸를 살린 LG의 '마법'이전 운영권자였던 호주 라파예트사가 적자를 못 이기고 파산을 선언한 이 광산을 운영경험이 전무한 LG상사가 1년6개월여 만에 정상으로 만들었다.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박 법인장은 "현지 광부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일이 급선무였다"고 설명했다. 전 운영자인 호주업체는 광산에 상주 인원을 한 명도 두지 않았지만 LG상사는 법인장을 포함해 한국인 직원 4명 모두 광산에 사무실을 차렸다.
금방 떠나겠거니 생각했던 현지 근로자들은 법인장이 직원 명부를 새로 만들고,근무복을 유니폼으로 통일하고,건물에 간판을 새로 다는 등 회사로서의 기틀을 다지자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LG 주재원들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각각 광산과 정련공장을 맡은 현지 책임자 2명과의 회의를 정례화했다. 채광을 담당하는 로저 코르푸스씨는 "라파예트사는 광물을 캐가는 일에 급급했지만 LG는 우리가 하는 말들을 들어준다"고 평가했다. 경쟁과 보상 시스템도 도입했다. 예컨대 파쇄기 고치는 일을 한국인 직원과 필리핀 엔지니어로부터 각각 아이디어를 받아 진행시켰다. 태업을 일삼던 현지 엔지니어들은 자기들에게 일이 맡겨지자 인근 도시인 레가시피 공과대학까지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결과는 필리핀 엔지니어들의 승리였다. 대형 댐을 만드는 등 폐수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도 현지인들의 제안을 따랐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현지 직원들은 모두 연말에 100%의 성과급을 받을 예정이다.
멈췄던 광산이 다시 돌아가면서 올해 라푸라푸 광산은 비록 소규모지만 흑자를 낼 전망이다. LS니꼬동제련 등 국내 기업 외에 인도 동(銅)제련소와도 거래를 텄다. 구리값이 갈수록 오르고 있는 데다 생산 시설도 100% 정상화되는 내년엔 이익 규모가 올해의 10~15배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까지 LG상사가 투자한 금액은 대략 3500만달러.이에 비해 향후 5년간 거둘 매출은 4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아직 법정관리중이고,지금껏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1~2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골칫거리 광산이 LG상사의 '효자'로 변하고 있었다.
라푸라푸(필리핀)=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