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하루 1000명 검사…밀입국자는 말투·눈빛만 봐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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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 공무원 우승화씨
사흘간의 짧은 연휴가 시작되는 이번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해외여행을 간다면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한 가지 '가 있다. 여권을 받아 든 출입국관리관의 손에 긁힌 흉터나 멍자국이 있지는 않은지.출입국관리직 공무원이 하루 종일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며 여권이나 검사하는 따분한 직종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들은 조용하고 무뚝뚝해 보일 때가 많지만 모두 무용담 하나씩은 갖고 있다. 공항에서 담당하는 위조여권 단속과 밀입국 차단은 물론 불법 체류자 단속과 관리,본국 송환까지 업무 영역이 상상 이상으로 넓다. 국내 체류 외국인 120만명 시대,이들은 보이지 않는 국경을 지키는 첨병이다. 5년차 출입국관리직공무원 우승화씨(30 ·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국동포 시장에 단속을 나갔던 그는 어깨와 팔에 멍이 들고 손등이 크게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
▼상당히 조용한 직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똑같은 출입국 공무원이라도 하는 일은 다양해요. 저는 2005년 공채로 입사해 2006년 6월 발령을 받고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서 2년 동안 일했습니다.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여성 근로자 50~100명의 신병을 담당해 출국할 때까지 여권 문제나 체불 임금,전세금 반환 등을 해결해 주었죠.이후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6개월 일했는데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고 조사해서 검찰에 송치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인천공항에는 올해 초에 배치받아 감식과에서 위 · 변조 여권을 판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루 평균 1000여명의 입국자를 심사합니다. "▼지금 보면 잘 웃는데 출입국 관리대에서는 다들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나요.
"불법 입국자나 블랙 리스트 등재 여부 등을 판별하다보니 얼굴이 굳게 돼요. 출입국자들에게 미소를 짓다가도 모니터로 의심 사항을 조회하게 되면 긴장하게 되거든요. 밀입국자들은 인상이 착해 보이는 직원에게 가는 경향이 있어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다보니 더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
▼공항에서 빈발하는 범죄는 어떤 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밀입국 시도가 많았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려는 환승객을 가장해 공항에 들어와 화장실 등에 숨어 있다가 인적이 뜸한 새벽녘에 공항을 빠져나가는 거죠.요즘에는 범죄 수법도 진화하고 있어요. 최근 몽골인 16명이 4층 이슬람 기도실에 있다 야간에 천장을 뚫고 밀입국했어요. 다행히 법무부와 국가정보원이 합동으로 단속을 벌여 모두 송환조치했습니다. "
▼위조여권을 판별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요즘엔 판독기가 발달해서 여권 자체를 위조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신 타인 명의의 진본 여권을 가지고 밀입국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죠.얼굴이 비슷한 사람의 여권을 구입하거나 훔쳐서 입국심사를 통과하려는 겁니다. 그런 경우 일단은 한국말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여권상으로는 한국에 처음 오는데도 바로 한국말로 답을 하는 경우 따로 분류해서 '심층심사'로 넘기죠."▼일을 하다보면 사람 보는 눈이 발달하겠어요.
"사람을 보는 눈이라기보다는 육감이 발달합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돌출행동을 잘 가려내고 손짓이나 말에서도 특이점을 가려낼 수 있죠.밀입국자들은 심사관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거나 딴전을 피우는 등 정상적인 출입국자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질문을 알아듣고도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중국계 동포들의 경우 생김새가 한국인과 똑같아서 일반인들은 구분하지 못해도 출입국관리관들은 대부분 구별할 수 있어요. "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뭡니까.
"대학시절 2년 정도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을 했는데 공항에서 본 출입국공무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입국할 때 처음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물론 그땐 업무가 이렇게 광범위한 줄 몰랐죠."
▼언론에는 불법 체류자 단속 모습만 부각되는데 외국인보호소 등에서는 돕는 역할도 하는군요.
"일단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더라도 본국에 송환될 때까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돌봐주려고 애를 써요. 2년간 도와드렸던 분들 중 20대 초반의 중국동포 여성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있다가 신원미상으로 경찰에서 외국인보호소로 넘어왔는데 한국말에는 거의 대답을 하지 않다가 중국어로 말을 거니까 조금씩 입을 열더라고요. 출입국 시스템을 조회해보니 다행히 중국에서 결혼비자로 입국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더군요. 국제결혼으로 왔다가 버림받고 오갈 데가 없어 노숙자로 떠돌았던 겁니다. 여직원들끼리 돈을 모아 항공권을 마련하고 '중국에서는 힘들게 살지 마시라'며 보내드렸죠."
▼불법 체류자를 단속할 땐 위험도 따르겠습니다.
"제보를 받고 사업장 등으로 출동하면 반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장에서도 출입국관리관이 들이닥치면 비상벨을 울려 대피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출입국공무원들은 영장을 제시하기 전에 도망갈 만한 퇴로를 차단하죠.출입국공무원도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는데 경찰 대하는 것과 달리 용의자들이 필사적으로 반항해요. 신원을 알 방법이 없으니 현장에서만 벗어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다 생계까지 걸려 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직원들과 불법체류자 모두 많이 다칩니다. 직원들이 칼에 찔리기도 하고 내팽개쳐져서 뇌진탕이 된 경우도 있어요. "
▼공채 공무원이 그런 일까지 하려면 힘들지 않나요.
"신입 교육 때 체포술 등을 배우긴 하지만 교육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무술 특기자를 특채하고 있죠."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현장에서 부딪쳐보면 쉽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물론 내국인도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고 느슨하게 단속하면 '불법체류자들이 활개를 치는데 담당기관에서는 뭐하고 있냐'고 민원이 들어오고요. "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막연히 불쌍하다는 생각을 넘어 이제는 구체적으로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합법적인 체류자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책이나 행정이 불법 체류자 단속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수록 합법적으로 입국하려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겠죠."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요.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여러 방면에서 일을 열심히 배우는게 우선이죠.장기적으로는 법무부 산하에 있는 출입국 · 외국인정책본부가 이민청으로 독립했으면 하는데 이 과정에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늘어나는 국내 거주 외국인과 불법체류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기관의 독립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인천국제공항=글 노경목/사진 김병언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