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승진과 명퇴 사이…올라가도 스트레스, 못해도 의연해야
입력
수정
평생 직장없어,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승진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10% 증가하는 반면 병원에 갈 시간은 20% 줄어든다. 그러다보면 건강이 악화되기 쉽다. '
영국 워릭대 연구진이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직장에서 승진한 사람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는 심해지는데 병가를 내면 무슨 말이 날지 몰라 참고 일하느라 건강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승진한다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란 얘기다. 실제 승진하고 나면 잠시 행복할 뿐 곧 마음이 무거워진다고들 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예상하지 못한 사고나 위기가 닥치면 어쩌나 등.임원으로 올라간 경우 기쁘지만 계약직 내지 임시직이 된 기분도 든다는 게 현실이다. 정년이 보장되다시피 하는 공기업의 경우 임원 승진을 기피하는 일도 있다고 할 정도다.
아무리 그래도 승진 못한 것보다 백번 낫지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것이다. 잘해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승진을 못해 동료나 후배들로부터 받는,안 됐지만 어쩌겠느냐는 식의 싸늘한 눈초리를 견디는 가슴,가족에게 무능한 인물로 비칠까 서글프고 참담한 심정,알아서 그만두라는 신호인가 싶어 괴롭고 비참한 마음만 하겠느냐는 반론이다.
한편에선 승진하든 못하든 빨리 발표되는 게 낫지 차일피일 미뤄지면 더 힘들다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 보면 피가 마른다는 것이다. 실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나쁜 소식'보다 '불확실한 소식'을 들을 때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제이콥 허쉬).인사(人事) 철이다.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는 이들도 있겠지만 기대했던 승진 대열에서 빠진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승진자 명단을 보면 대부분 수긍이 가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수도 있다. 잔뜩 기대했던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 당혹감과 분노,원망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빽'이 없거나 평가자와 궁합이 안 맞는 탓이다 싶으면 서럽고 기가 막힌다.
그나마 제자리에 머문 사람은 좀 낫다. 좌천됐거나 이름과 달리 전혀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 통보를 받은 이들의 가슴은 무너질 것이다. 설사 조건이 좋다고 해도 직장을 잃는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일진대 그렇지도 못한 형편이면 장차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 게 틀림없다.
어떤 경우에도 불평과 원망으로 날을 지새우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물 먹은 경우 그만 둘 생각이라면 모르지만 계속 다닐 거라면 승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 절치부심 노력하는 게 순서다. 본의 아니게 애증이 겹친 직장을 떠나야 할 때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수명은 길고 평생직장은 없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만큼만 아픔과 시련을 주신다고 하거니와 스스로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한 세상만사 새옹지마인 일이 대부분이다.
봉급쟁이로 사는 동안엔 승진해도 노상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과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압박감에 전전긍긍해야 한다. 국내 직장인 80% 이상이 만성위염에 시달린다는 보고도 있다. 갑작스런 명퇴 통보가 끔찍해도 고민과 방황으로 날을 새우기보다 이참에 독립,무한경쟁에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고도 살아갈 길을 개척해 볼 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경영권을 잃게 됐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떠나야 하나 싸워야 하나,아니면 다 그만두고 죽어야 할까. 억울한 심정을 언론에 모두 공개할까. '그런 다음 스스로를 달랬다.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할 때도 있다. ' 그리고 15년 뒤 다시 당당하게 일어섰다. 재기에 필요한 건 분노와 걱정이 아닌, 달라진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데 대한 감사와 간절한 기도다.
박성희 수석 논설의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