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역사로부터 배우는 경제운영

97년 외환위기 객관적 평가 절실…새해 유연한 경제구조 마련 역점
정부는 새해 경제의 전망과 운영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3 · 4분기부터 보이고 있는 OECD 국가 중 가장 강력한 회복국면이 금년에도 본격적으로 이어진다는 전제하에 5% 내외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 데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금번 경제위기의 특성에 비춰 볼 때 아직도 정확하게 현 상황을 판단하거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은 전문가들조차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폴 볼커가 위기의 진행과정에서 이야기한 금번 위기가 갖는 주요한 특징인 '불가지성(不可知性)'에 아직은 큰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전제와 가정 그 어느 것도 확실성을 갖지 못하고 그래서 과학으로서의 경제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앨런 그린스펀이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위기"라고 말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가 그렇게 한두 해 만에 수습이 되고 회복세로 간다면 그간의 논의는 지나친 호들갑이었던가.

범세계적으로 재정과 금융을 통해 퍼부은 돈이 없었더라도 과연 경제가 이 정도의 회복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언젠가 시행할 수밖에 없는 출구전략이 시행되었을 때에도 경제의 회복력이 유지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당연히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최근 일부 경제지표의 호전이 우리 경제 펀더멘털의 개선을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경기회복을 위한 그간의 재정 · 금융 노력, 특히 IMF가 분석한 바와 같이 세계 최대 재정의 경기보완 기능에 뒷받침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 하는 경기관련지표,예컨대 성장률,경기의 동행 · 선행지수,주가,환율,유가,부동산 가격지수 등에도 불구하고 구조관련 지표, 즉 고용,내수,가계 및 금융의 부채구조,기업의 투자심리,소비심리 등에는 별 개선의 징후가 없다는 것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

따라서 도무지 정확할 수 없는 경제예측에 지나친 의미를 두고 예측의 호 · 불호(好 · 不好)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설정된 높은 거시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식의 경제운용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진정 우리 경제에 중요한 것은 전 세계가 당면해온 위기의 본질과 그 배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유사한 위기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운 경제,또 예측할 수 없는 위기를 맞더라도 신축적으로 대응하면서 위기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연한 경제의 구조적 토대를 닦는 것에 새해 경제운영의 역점이 주어져야 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안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한다. 미래는 과거에 대한 태도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금번 글로벌 위기의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필요 이상의 추락을 경험하고 아직도 이런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10여 년 전 우리가 맞았던 외환위기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편견없는 그리고 의미있는 해석과 정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이후의 우리경제의 운영방향을 설계하지 않은 데에 근본원인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본격적인 경제회복을 해 나갈 금년 이후의 경제운영은 역사적 사실인 글로벌 금융 · 경제 위기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이해와 해석,그리고 정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히 금번 위기를 겪으면서 범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지극히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적절하고 균형적인 시각을 정립하는 것은 세계경제의 문제인 동시에 한국경제가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