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주주가치 경영…'소비자 자본주의' 시대 온다

하버드비즈니스 리뷰
주가·배당·단기실적 집착
잭 웰치식 경영 실패한 셈
"'소비자 자본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해온 기업 경영 패러다임은 이제 전환기를 맞고 있다. "

미국 하버드대가 발행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최신호(1 · 2월호)에서 영미식 자본주의의 기업경영 원칙으로 여겨지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학장은 '소비자 자본주의 시대'라는 논문에서 주주의 이익이 기업 경영 목표인 '주주 자본주의'가 결함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주주 대신 소비자를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틴 교수는 그 근거로 기업 주가는 현재 실적보다 미래가치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지난 10년간 S&P 500 지수 구성종목의 주가수익비율(PER)은 평균 27배로,올해 실적은 전체 기업 주가의 4% 정도만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경영진이 택하는 전략은 장기 실적과는 거리가 멀다고 마틴 교수는 주장했다. 증시 전망에 대한 기대가 높을 때는 구조조정,인수 · 합병(M&A),배당 인상 등 단기 호재를 잇따라 만들면서 주가를 띄우고,주식시장이 침체에 접어들 경우 회계를 바꿔 손실을 줄이는 방식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단기 실적 개선을 위해 경영진이 택하는 방식은 긴 마라톤에서 무리하게 스퍼트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스퍼트를 내고 지친 선수는 이후에는 느린 속도로 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임 최고경영자(CEO) 잭 웰치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실적 개선을 압박하는 웰치의 경영방식은 GE를 GE캐피털이 중심이 된 금융 위주 성장전략으로 몰아갔다"면서 "결국 부실화된 GE캐피털은 현재 GE의 발목을 잡고 있고 후임인 제프 이멜트는 기껏해야 평범한 성적밖에 내지 못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반면 '소비자 만족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꾸준히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2000년 앨런 라플리가 CEO로 취임한 뒤 경영목표를 주주에서 소비자로 수정하며 체질 개선에 성공한 프록터앤드갬블(P&G)이 대표적이다. 라플리는 취임 직후 주가와 현금배당을 기준으로 지급하던 임원 보수체계를 시장점유율 매출 투자 등을 반영하도록 뜯어고쳤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최고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존슨앤드존슨(J&J)도 소비자 만족을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마틴 교수는 "피터 드러커가 언급했듯이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객을 유치하고 그들을 계속 붙잡는 것"이라면서 "소비자들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익이나 주주가치 같은 다른 사항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인모션(RIM)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 회사 고위직이 업무 중에 RIM의 주가에 대해 언급하면 전 직원에게 도넛을 사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규칙은 단기적인 주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1997년 RIM의 기업공개(IPO) 때부터 적용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 증권사 애널리스트와의 회동에서 RIM의 주가 급등에 대해 언급한 최고운영책임자(COO) 돈 모리슨은 800여명의 직원들에게 도넛을 돌렸다. 하지만 RIM이 주가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주주들은 거의 없다고 마틴 교수는 덧붙였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