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원전수출, 챙겨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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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자 요구 기술자료 등 철저 대비미국 시카고에 있는 사젠트&런디는 세계적으로 전통이 있는 발전소 전문 설계회사였다. 독일에서 이민 온 유대인 기술자들이 설립 초창기에는 조그만 석탄화력발전소를 설계하다가 때마침 카네기스틸,인렌드스틸 등 대규모 제철소가 피츠버그에서 시카고 쪽으로 확장되어 전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났고 따라서 그 회사도 같이 커졌다.
전문업체 육성, 수출효과 극대화를
1970년대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활발해지자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설계용역회사로 성장,1만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각 분야별로 전문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도 잘 나가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위기에 빠졌다. 다름 아닌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결정으로 미국내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신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5년에 걸친 설계와 7년에 걸친 시공으로 완공된 지머원자력발전소는 단 하루도 전기를 생산해보지 못한 채 폐기됐다. 그때가 1980년대 초였고 한국은 중동건설붐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오기 시작할 때였다. 사젠트&런디는 벡텔이나 플루어다니엘과는 달리 설계용역전문회사로서 운영자금은 전부 고객인 전력회사의 용역비에 의존했으므로 오래 지탱할 여력이 없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고객이 바로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KOPEC)였다. 기술이전료는 요구하는대로 줄 테니 KOPEC 기술자들을 교육시키고 모든 기술자료를 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사젠트&런디는 원자력 기술이전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다른 경쟁사들이 좋은 기회를 가로챌 것 같았고 기술이전 조건이 너무 좋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후 10년 동안 양사의 기술진이 합동 근무하면서 이룩한 것이 오늘날 한국의 원전기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초가 되었다.
이번 UAE와의 계약은 우리의 기술을 세계에 내놓는 계기가 되었고 거대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초석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 만큼 우리가 넘어야 할 위험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음을 미리 알고 준비해야 한다.
이번 원전수출은 중동건설 붐 당시 엄청난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비롯한 각종 플랜트공사를 수주,관리했던 우리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어렵게 성사된 원전 수출이 행여나 실패로 추락할 가능성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해보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UAE가 아무리 우리와 친밀한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건축주로서의 역할은 철저히 할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즉 건축주는 우리의 기술을 검토 평가할 자체 자문단을 구성해 놓았을 것이고 그 자문단은 필요한 모든 기술자료와 근거를 요구할 것이다.
또 만일 우리의 하청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를 고려하고 계약서를 꾸며야한다. 그 외에도 미국기계학회(ASME)의 설계시방서 적용 및 해석도 쉽지않은 작업이다. 냉각장치 고장으로 인한 사고(LOCA),초고압 파이프선 설계 및 격납용기 설계 시공, 심지어 뉴욕의 9 · 11사태를 방불케 하는 B747 또는 A360 등의 대형 여객기를 이용한 테러 행위 등의 가능성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
또 이번의 400억달러 계약 효과가 대기업에만 머물지 않고 중소기업으로 파급되어 청년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각종 용접 점검과 기록,격납용기의 철근배관 및 안전밀폐출입문 전문업체 등 수많은 부품을 설계 제작하는 소규모 전문업체를 양성해야 한다. 원전작업만은 절대로 싼 노동력으로 대체할 수 없다. 세계가 우리의 품질을 빠지지 않고 보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
정석화 < 美 유타대 교수·건축구조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