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기관장에 듣는다②]황건호 금투협 회장,"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총력"

"아이디어들이 떠올라서 미치겠어요."

내일 모레면 환갑인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59·사진).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얘기는 그를 위한 얘기같다. 황 회장은 거침없고 솔직하다. 그래서 업계를 시원하게 대변했고, 그 또한 이러한 역할을 자청하곤 했다.환갑을 코앞에 둔 황 회장이지만, 아이디어를 일로 만들 궁리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그의 정신은 아직도 청년(靑年)이다. 청년 황건호는 올해 금융투자협회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까?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금투협 시무식장에서 황 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황 회장은 250여명의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인근 식당으로 이동했다. 통째로 빌린 식당에서 전 직원과 함께 아침 떡국을 먹기 위해서다. 모든 직원과 악수하고 함께 떡국을 먹는 일은 올해 뿐 아니다. 올해로 6번째로 하는 연례 행사니 황 회장의 취임 다음해부터 꼬박 이어온 셈이다.

그렇게 뛰어온 시간들만도 6년째다. 하지만 황 회장은 아직도 에너지와 재기가 넘친다. 기자가 만난 청년 황건호는 연초부터 사고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올해도 장기·간접·분산투자 위해 뛴다…채권시장 효율성이 앞장

그렇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저지르는 사고들은 아니다. 황 회장이 내놓는 대부분의 제안들은 장기투자, 간접투자 그리고 분산투자 등과 궤를 같이한다.

"지금까지는 장기·간접투자에 중점을 뒀지만 올해에는 분산투자를 알리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칠 예정입니다. 주식 이외에 분산투자처라면 아무래도 채권입니다. 개인과 기관을 위한 시스템을 개선해서 시장참여자들을 늘리고 시장의 투명도를 높일 계획입니다."국내 채권 시장의 80% 이상은 장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효율적으로 거래를 지원하는 정형화된 시스템은 없는 상태다. 장외시장에서는 사설메신저를 이용한 거래방식이 일반화됐다.

금융투자협회는 채권유통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 '채권거래 전용시스템'을 개발중이다. 올해 상반기 중으로 이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쉽게 말해 채권거래 전용 메신저를 구축한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의 '투명성'만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정말 관치금융에서나 가능한거죠. 무엇보다 '효율성'이 담보되야만 업계의 참여도도 높아지고 '투명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사설 메신저의 기능에 호가집중시스템(BQS, Bond Quotation System)을 업그레이드하고 보안기능까지 더할 예정입니다."또한 개인투자자들을 위해서는 채권판매정보시스템, 즉 채권몰을 운영할 계획이다. 채권몰은 증권사가 생산하는 채권판매정보를 채권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주유소의 판매가격을 공개하는 사이트와 비슷한 개념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개인들의 투자가 이렇게 많아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날수 있는 데에는 HTS(홈트레이딩시스템)와 같은 시스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채권몰도 마찬가지예요. 채권투자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자는 겁니다."

'채권거래 전용시스템'과 '채권몰'은 이번달 안에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시험가동과 모의 운영을 거쳐 1분기 중으로 시스템을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화합으로 일군 통합협회 1년…"뛰는 일만 남았다"

1분기 중에 할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금투협은 다음달 3일부터 이틀간 아시아투자자교육포럼(AFIE)을 연다. 지난해 세계자산운용협회 총회에 이은 국제적 규모의 행사다.

AFIE는 한국금융투자협회를 주축으로 아시아 각국의 투자자교육기관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다. 세계적으로 투자자교육 기관들이 모인 사례는 드물었고, 더군다나 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AFIE의 회칙과 사무계획 등을 의결하는 창립총회가 열리게 된다.

"아시아에서 투자자 교육기관들을 모아서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크를 하자는 겁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준비했었고 워크숍도 여러번 가졌어요. 지난해 개최하려고 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올해로 미뤄졌습니다. 한해 늦어진만큼 내용은 풍부하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아시아 16개국 23개기관이 참여할 예정인 이번 행사는 국제세미나도 열게 된다.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위한 투자자교육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행사 기간 중에 통합협회(옛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 출범 1주년도 맞게 된다.

말많은 금융투자 업계에서 협회의 조용한 통합은 이례적으로 꼽힐 정도다. 지난해 초 통합과 동시에 조직원의 15%를 명예퇴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직원들의 연봉을 삭감하고, 외부인사를 대폭 영입하는 한편, 인턴직원을 채용하는 등 앞장서서 혁신을 주도했다. 이렇게 초반기에 문제들을 털어냈다. 이제는 잡음도 없다. 전진(前進)만이 과제로 남았다.

"통합하는데 별탈 없었던 비결이요? 이미 아시잖아요. 바로 화합(和合)이죠."

황 회장은 지난해 조직의 '통합' 이전에 '화합'을 강조했다. 구성원들간의 화합이 있어야만 진정한 통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각 부서를 돌며 엄청난 양의 화합주(酒)를 마셨다. 지난 신정 연휴에도 출근해서 노조와 머리를 맞댔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세금제도 건의 등이 과제"

황 회장은 올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꼽았다. 한국은 2008년부터 MSCI 선진지수 편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외환시장 자유화 부족 △외국인 등록제도(ID)의 경직성 △반경쟁적 요소 등이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한국증시가 FTSE(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 선진국지수에 편입됐다고 환호했지만, MSCI 선진지수와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한 규모입니다. 올해 한국거래소와 협력해서 MSCI가 제기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해결하고 편입을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황 회장이 MSCI 지수편입을 염두에 둔 것은 오래된 일이다. 협회장을 맡으면서 고민은 시작됐다. 모건스탠리 관계자들에게 '한국이 그리스, 이스라엘 보다 뒤질 이유가 뭐냐'며 따져묻기도 했다. 국내 금융기관들을 찾아가 공감과 협조도 이끌어 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협회의 모토인 장기투자와 맞닿아 있다. 기관과 개인투자자를 넘어 외국인들의 장기투자로 유도하자는 의도다.

"외국인 투자자라고 다 좋은 투자자일까죠? 외국인들은 왜 우리시장에 장기투자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시장이 좋아질 때는 계속 사지만 아닐 때에는 썰물처럼 빠집니다. 결국 시장의 변동성과 리스크는 커집니다. 그 이유는 우리 시장이 이머징으로만 분류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머징 시장에서는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을 기대하기 마련이죠. 외국인들이 왜 빠질까 고민하기 이전에 장기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자는 겁니다."

그에게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외에 또다른 고민이 있다. 바로 세금제도다.

올해로 10년이 된 프리보드 시장은 아직도 세금문제를 안고 있다. 벤처기업 소액주주들은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되지만 대기업 주식은 양도차익의 20%, 중소기업 주식은 양도차익의 10%를 양도소득세로 내고 있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주식매매차익이 모두 비과세인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13년부터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에 0.01%의 거래세를 매길 예정이다. G20(주요 20개국) 등 선진국 중 파생상품 거래에 과세를 하는 나라가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융상품과 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제는 그 때 그 때 대처하기 보다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협회에 금융세제팀을 신설할 예정입니다."

세제와 관련해 민감한 사안들을 직접 풀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연구팀을 조직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한다. 황 회장은 강원도 평창출생으로 서울 용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럿거스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증권업계에서만 34년간 몸담은 정통 증권맨이다. 1976년 대우증권 입사해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 겸 코리아펀드 부사장을 지냈고 여러번의 승진을 거쳐 대우증권 부사장까지 올랐다. 1999년 메리츠증권 사장을 역임하다 2004년 한국증권업협회장을 취임했다. 지난해부터 초대 금융투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