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빼앗은 모든걸 돌려주시오" 잉카 황제 말이 끝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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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최후의 날
킴 매쿼리 지음 │최유나 옮김│옥당 │ 612쪽│3만2000원
1532년 11월16일 토요일 아침,안데스산맥의 고원도시 카하마르카의 중심광장.6000명 가까운 잉카 군사를 이끌고 스페인 정복군을 찾아온 아타우알파 황제는 "내 땅에서 빼앗은 모든 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정복군과 함께 온 벨베르데 수사(수도자)는 스페인 국왕 명의의 요구서를 낭독했다. 교회와 스페인 국왕에 복종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황제가 이를 거부하자 대포의 굉음과 함께 광장을 둘러싼 건물에 숨어있던 정복군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정복군의 수는 겨우 168명.그러나 화승총과 장검,창 등을 휘두르며 도륙하는 정복군 앞에 잉카군은 당황했다. 겁에 질린 잉카군은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전멸했고,황제도 정복군에 생포돼 잉카는 스페인의 지배 아래 놓였다. 《잉카 최후의 날》은 이 같은 잉카 멸망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인구 10만을 넘은 적이 없던 잉카 부족이 단기간에 1000만 인구의 대제국을 건설한 과정,부와 영예를 위해 신세계로 향했던 당시 구대륙의 정황과 정복자들의 잔인한 침략과 약탈상 등을 실증적이고도 생생히 묘사했다.
특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한 잉카 반군의 활동은 책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중 있게 다뤘다. 스페인에 의해 꼭두각시 황제 자리에 앉은 망코 잉카가 이끈 반군은 한때 수도 쿠스코와 리마를 포위해 공격할 정도로 선전했으나 분패했다. 이후 안데스 고원에서 내려와 열대우림을 근거지로 게릴라전을 펼기치도 했으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체포돼 처형되면서 반군은 36년 만인 1572년 9월 완전 궤멸됐다.
저자는 잉카제국이 멸망한 진짜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다. 남미에는 없었던 소 · 돼지 등의 동물이 정복군과 함께 들어와 퍼뜨린 질병에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이 대거 희생된 점,철광이 드물어 강철 무기와 총이 없었던 점,고등문자가 없어 정보 축적 및 전달이 적었던 점,잉카제국 건설 과정에서 정복했던 주변 부족들이 반(反)잉카의 선봉에 섰던 점 등이다. 특히 신세계에서 약탈한 황금으로 부와 신분상승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당시 구대륙의 상황은 잉카 몰락을 부추겼다. 잉카 침략을 이끈 프란시스 피사로는 물론 정복군 모두가 가난과 낮은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세계 정복에 나섰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무기를 손에 든 기업가'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