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르즈 칼리파'가 던지는 숙제

시공 탁월하지만 설계 외국에 밀려
국내업체에 핵심기술 축적 기회를
지난 4일 부르즈 두바이가 5년간의 공사 끝에 부르즈 칼리파라는 새 이름으로 전 세계 앞에 등장했다. 세계 최고높이(828m)의 위용과 더불어 현대 건축기술의 진가를 보여준 이 건물은 인류 최초의 100층 규모 마천루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 · 381m)이 세워진 지 80여년 만에,그리고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 101 금융센터(101층 · 508m)가 왕관을 차지한 지 불과 6년 만에 그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부르즈 칼리파는 분명히 건축사에 길이 남을 대역사(大役事)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설 당시와 비교해 건축공학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으며,더욱이 세계 최고층 건물을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완공했다는 것은 어느 분야의 발전과 비교해도 자랑할 만하다. 이제 우리나라는 100층 이상 건물을 시공해 본 세계 4개국 중의 하나이며,150층 이상을 시공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을 수주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축하한 적이 있다.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기술강국이 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거대한 플랜트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사실이 그러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우리의 해외건설 수주총액은 493억달러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현재 6개)의 초고층 건물(100층 이상)을 계획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건축에는 설계,구조,시공 세 분야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시공분야로서 건설회사의 몫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계획되고 있는 대형 초고층 프로젝트를 보면,설계와 구조(설계)는 모두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형 외국 설계회사들이 기술력과 경험면에서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중국,대만은 쉽게 외국회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만의 타이베이 101 건물은 대만인 건축가(C Y Lee)가 설계했다. 구조설계는 대만 회사와 외국 회사가 공동 수행했다. 중국은 대부분 국내 설계회사와 해외 설계회사가 시작부터 공동작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국 설계회사는 조만간 자체 기술력을 확보할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주들은 좋은 건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국내 설계와 구조설계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비싼 기본설계는 외국에 맡기고,'뒤치다꺼리'라 할 수 있는 실시설계는,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해 국내 설계회사에 저가 덤핑을 강요한다면,어디에서 좋은 인재들이 양성되고,어디에서 기술력이 축적될 수 있을까.

정부의 정책도 서민중심적이라면,건축 설계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살펴봐야 한다. 대통령의 관심사인 4대강과 아파트 물량 공급만 볼 것이 아니라,왜 건축이 3D 업종으로 전락하고 있으며,왜 3.3㎡(1평)당 3000만원 하는 아파트의 구조설계 용역비가 1000원밖에 안되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된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 건축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아무리 국내에 초고층 건물을 많이 지어도,그것은 외국회사들을 위한 잔치일 뿐이다. 또 아무리 해외에서 시공으로 성과를 올려도,건축의 정수인 설계와 구조에서는 국제경쟁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해외의 주요 언론들은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 부르즈 칼리파의 설계자와 구조설계자에 대한 언급은 여러 곳에서 하고 있지만,이를 시공한 우리 건설사의 이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여러 면에서 음미해 봐야 한다.

김상대 고려대 교수·건축구조공학 / 세계초고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