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기 금리인상' 견제…한은과 충돌 빚나

재정부, 열석 발언권 행사
정부 "확장정책 협조 필요"…한은 "독립성·중립성 후퇴"

기획재정부가 11년 만에 열석(列席) 발언권을 행사키로 7일 결정한 것은 한국은행의 조기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의 확장적 정책기조 유지와 달리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위기대책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와 정책에 엇박자가 예고됐었다. 열석 발언권이란 재정부 차관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한은법 91조에 근거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비상경제대책회의 1주년을 맞아 "위기 극복을 위해 올 상반기까지는 비상경제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금리인상 재정축소 등 출구전략에 대해선 "오는 6월 캐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반기 중엔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을 시행해선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지난 5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금리는 금통위가 판단할 문제지만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아직 금리를 인상할 움직임이 전혀 없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은은 금리 인상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해 12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우리는 문(출구)에서 이만큼 떨어진 위치에 있는 만큼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려면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2010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한 속도와 폭으로 조정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선 한은이 올 상반기 중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할 것이며 이르면 2월부터 금리 인상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재정부는 정부의 재정정책과 한은의 금리정책이 서로 엇박자가 날 경우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공조가 굉장히 중요해 열석 발언권 행사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재정부가 한은법 91조에 명시된 권한을 적극 행사해 기준금리 인상을 가급적 하반기로 늦추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정부는 당장 8일 금통위부터 이 같은 권한을 행사할 예정이다. 허경욱 1차관이 오전 9시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의 경기인식과 판단을 정리할 계획이다. 허 차관은 이 자리에서 출구전략을 시행하기엔 경기회복이 견고하지 않다는 점을 금통위원들에게 설명할 것이라고 윤 국장은 전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유쾌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1999년 6월 이후 금통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통화정책에 대해 한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해 주기 위한 일이었는데 이번 조치는 그간의 정책에서 후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이제까지 1998년 4월9일,1999년 1월7일과 28일(이상 정덕구 차관),1999년 6월3일(엄낙용 차관) 금통위에 참석했었다. 이 가운데 경제판단이나 통화정책에 대해 발언한 것은 1999년 1월7일 한 차례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은 열석 발언권이 있는 영국과 일본의 경우 통화정책의 정치적 중립성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8일 금통위에 참석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위원장이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