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서 동남아까지 '해적 공포'…안전지대는 없다

아데만·호루무즈·말라카…
지난해 300여건 피습
국제 해상운송로 위협

최근 예멘 해군은 특별한 사업 하나를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는 아덴만을 지나는 선박들이 5만5000달러를 내면 군함을 보내 안전하게 호위해준다는 내용이다.

예멘 해군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예멘 군인들이 직접 선박에 탑승하고 지상 화력 지원도 충실하다"며 "이용 고객들 모두 안전하게 수에즈운하까지 항해를 마쳤다"고 자랑했다. 로이터는 2008년 12월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가 탄자니아 해군과 무장 호위 계약을 맺은 적이 있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민간 상선이 해적 때문에 무장 호위선을 대동한 것은 19세기 초 이후 200여년 만이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해적이 창궐하면서 국제 해상 수송로가 위협받고 있다. 매해 3만척의 선박이 지나며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아덴만,한국 중국 일본과 중동 유럽을 잇는 최단 루트에 위치한 말레이반도 남부 말라카 해협은 이제 군함의 호위 없이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또 미국과 핵 개발을 둘러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이란이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전 세계 원유의 40%가 수송되는 호르무즈 해협도 안전지대에서 멀어졌다.

국제상공회의소 산하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전 세계에서 해적에게 선박이 습격당한 사례는 324건으로 전년 동기(194건)보다 67% 급증했다. IMB는 소말리아와 예멘 사이의 아덴만과 소말리아 동부 해안에서 해적의 습격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두 해역에서 발생한 선박 납치 사건은 47건이었으며 해적이 습격했지만 퇴치한 경우는 67건에 달했다. IMB의 사이러스 무디는 "1992년 이래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해적 공격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풀려난 중국 국적의 석탄 운반선 더신하이호가 해안에서 1030㎞ 떨어진 지점에서 납치되는 등 소말리아 해적들의 활동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아덴만은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잇는 수에즈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꼭 지나야 하는 해역이다. 수에즈운하가 막히면 아프리카를 도는 1만㎞의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해운업체들로선 비용 증가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전에는 수에즈운하를 이용하기 위해선 운하 사용료 20만달러와 전쟁보험료 2만달러만 내면 됐다. 하지만 해적이 창궐하면서 선박 호위 요원을 고용하는 데 2만5000~10만달러를 추가 지출하는 해운업체들이 늘고 있다. 해적들의 선박 탐지를 피하기 위한 장비 이용에 추가로 2만~3만달러를 더 내는 경우도 있다. 나이지리아도 최근 해적 행위가 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해적들은 빈약한 장비의 나이지리아 해군 함정을 기관총 등으로 격퇴하면서 유조선을 납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은 2005년쯤부터 시작된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퇴치 활동으로 많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IMB는 여전히 요주의 지역이라며 "언제까지 군함의 순찰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닻을 내리고 입항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범행 대상이 되고 있는 방글라데시나 베트남도 발생 횟수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란 핵 개발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달 말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에서 신무기 시험을 겸한 대규모 훈련을 실시한다고 6일 발표했다. 미 해군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란이 2007년부터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해군력 증강을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전쟁 발발시 호르무즈 해협을 기뢰와 대함미사일,고속정 등으로 봉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은 세계 석유의 29.8%,천연가스의 29.1%를 공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치안 불안정도 이 지역 해상 운송에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지적된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