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자산 리모델링…집부터 줄여 상가·원룸 투자하라

대형→소형, 서울→수도권 이사…수익형 부동산으로 '월세수입'
미디어 관련 중소기업에서 간부로 일하다 작년 초 정년퇴직한 김모씨(60).그는 15년 넘게 살아온 서울 성동구 옥수동 43평형 아파트를 작년 8월에 팔았다. 매각대금은 10억원.그러고는 성남 판교신도시 38평형 아파트로 전세(2억원)를 얻어 이사했다. 여유 돈을 만들어 고정 수입원을 확보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문가 도움으로 그가 구입한 수익형 부동산은 성남 복정역(분당선) 역세권에 있는 14억원짜리 원룸 주택.전세보증금 7억원을 끼고 7억원을 투자했다. 19채 원룸에서 최근 2개월간 월 300만원씩의 월수익을 올렸다. 김씨의 경우처럼 50대 중반 이후 은퇴자들이 '주택 규모 줄이기'에 나섰다. 이를 통해 확보한 여유 돈을 수익형 부동산 등에 투자,고정 수입을 얻는 부동산 자산 재설계(리모델링 · remodeling)도 본격화되고 있다.

8일 부동산컨설팅 및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 · 자영업에 종사하다 은퇴하거나 은퇴할 사람들의 주택 재설계 문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유엔알컨설팅에 지난해 접수된 부동산 재설계 상담자수는 50여명에 달했다. 이는 이 회사 전체 컨설팅 대상자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2~3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금융권 자산관리 설명회에서도 이 같은 징후는 뚜렷하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지난해 10여곳에서 우량고객 자산관리 설명회를 가졌는데 50~60평형대 아파트 거주자 중 20억원대 이상 자산을 갖고 있는 서울 강남권 거주자는 40평형대,강북과 신도시에 살고 있는 10억~15억원대 자산 보유자는 30평형대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집 줄이는 게 우선

우리나라 중산층의 은퇴 후 자산 재설계는 주택 규모를 줄이면서 여유 자금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많은 상속을 받은 자산가와 우량 대기업 임원 출신 등을 제외하면 국내 중산층의 상당수는 주택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김일수 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설명한다.

주택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먼저 값싼 인근 지역의 비슷한 크기의 주택으로 이사하는 방법이다. 주택시세가 10억~15억원 내외인 은퇴자가 주로 선택할 수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살던 은행 지점장 출신 김모씨(55)는 용인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주택 크기(48평형)를 종전과 같이 유지했다.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늘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월수익을 얻는데 초점을 맞춘 방법이다.

◆"상가는 은행 편의점 약국 빵집 좋다"

10억~15억원 내외의 자산 보유자가 집을 줄여 여유 돈으로 부동산에 재투자할 때 월세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상가 오피스텔 소형주택 등의 임대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중 상가는 임차인의 월세 납부 능력을 따져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합수 팀장은 "안정된 월세가 예상되는아파트 단지 내 상가와 근린상가를 추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억원 이상 자산가라면 은행 증권 등 금융회사에 5년 이상 안정적으로 임차하는 상가를 추천했다. 그는 수익부동산 투자 후 여력이 생길 경우 가치주 중심으로 주식투자를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오피스텔은 역세권 등 임대 선호지역에서 소형 평형으로 좁혀 투자해야 한다고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밝혔다. 투자 대비 자산가치 상승이 낮아 투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경매 등을 통해 매입 단가를 최대한 낮추는 게 키포인트다.

◆원룸 · 다가구는 사전 수요조사 필수

중견 제약사에서 중간 간부로 퇴직한 김모씨(56)는 정밀한 수요조사 없는 투자로 낭패를 봤다.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를 팔아 8억원대의 자금을 손에 쥔 김씨는 일부 대출까지 받아 경기도 하남지역 다가구 주택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자신은 맨 위층인 3층으로 이사하고 1~2층은 임대할 계획으로 지난 6월 완공했으나 임대가 안나가 공사비도 다 못주고 있다. 하남의 경우 값싼 소형 아파트가 많아 다가구 주택 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고준석 신한은행 지점장은 "미리 세들어 살던 사람 없이 원룸 같은 도시형 생활주택을 새로 지어서 임대사업을 할 때에는 수요조사가 필수"라고 말했다.

◆부동산 재설계 내년 이후 늘어날 듯

은퇴자들의'주택 줄이기'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baby boom) 세대가 내년부터 정년(평균 55세)을 맞게 됨에 따라 내년 이후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달 말 KT가 5992명에 달하는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했고 농협을 비롯한 상당수 금융회사들까지 명퇴 작업에 들어가는 등 이미 곳곳에서 은퇴자들이 몰려나오는 양상이다. 이들이 본격적인 주택 줄이기에 나설 경우 대형 주택 매물이 늘어나면서 중소형 주택에는 수요가 몰리는 주택시장 구조조정도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712만여명의 베이비붐 세대 중 자영업자를 뺀 임금근로자수는 327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내년부터 9년간 연평균 36만여명씩이 기업을 떠나게 된다. 김 팀장은 "국내 베이비부머들은 높은 사교육비 등의 부담으로 여유 자산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였다"며 "때문에 은퇴자들의 '주택 줄이기'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