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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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린 폭설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다. 여기저기에서 각종 동파사고와 교통사고가 발생했고,지하철 문이 얼거나 버스가 멈춰서 교통이 마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하철역은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폭설이 내린 지 사나흘이 지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빠른 대처와 준비가 아닌 미루기식 안전불감증이 몰고 온 결과일 것이다. 집 앞에 쌓인 눈조차 치우지 않아 동네를 나설 때도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한 풍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이웃끼리 주먹다툼이 났다는 뉴스도 들린다. 한 주택가에서는 눈을 쓸던 빗자루와 쓰레받기까지 동원돼 험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명동의 한 골목길에서도 눈을 자기 상가 앞으로 치웠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폭설이 몰고 온 흉흉한 민심 때문인지 저녁에 잠시 들른 명동성당 앞은 여느 때와 다르게 스산했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거리는 어느새 처치 곤란의 눈과 함께 황량함만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고요한 명동성당 앞을 걸으니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아른히 되살아났다.
꼭 이맘때였을 것이다. 지난해 초,명동성당에서 남산 1호 터널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두터운 옷차림을 하고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는 사람들은 서있는 줄이 줄어들지 않아도 어느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보온병에 든 차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마시며 몸을 녹였다. 무거운 짐을 서로 챙겨주는 모습도 보였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을 위한 애도 행렬이었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가슴 속 아버지를 잃은 듯한 허전함과 서운함을 안겨주었던 김수환 추기경.당신의 삶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삶이었음에도 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을 아끼지 않았기에 그의 선종(善終)은 지켜보는 이들을 자못 처연하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거창한 정치이념을 실현한 분도,큰 기업을 경영한 분도 아니지만 그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메시지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삶의 지침이 됐다. 필자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누군가의 삶에 희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복지재단인 '본사랑재단' 발족을 통해 한걸음씩 시작하고 있다. 지난 동지에는 종로 노인복지회관에 계신 어르신들께 따끈한 팥죽 한 그릇씩 쑤어드렸는데,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1년 전 추기경이 남기고 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당부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김철호 본죽 대표 hope21cc@hanmail.net
폭설이 내린 지 사나흘이 지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빠른 대처와 준비가 아닌 미루기식 안전불감증이 몰고 온 결과일 것이다. 집 앞에 쌓인 눈조차 치우지 않아 동네를 나설 때도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한 풍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이웃끼리 주먹다툼이 났다는 뉴스도 들린다. 한 주택가에서는 눈을 쓸던 빗자루와 쓰레받기까지 동원돼 험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명동의 한 골목길에서도 눈을 자기 상가 앞으로 치웠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폭설이 몰고 온 흉흉한 민심 때문인지 저녁에 잠시 들른 명동성당 앞은 여느 때와 다르게 스산했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거리는 어느새 처치 곤란의 눈과 함께 황량함만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고요한 명동성당 앞을 걸으니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아른히 되살아났다.
꼭 이맘때였을 것이다. 지난해 초,명동성당에서 남산 1호 터널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두터운 옷차림을 하고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는 사람들은 서있는 줄이 줄어들지 않아도 어느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보온병에 든 차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마시며 몸을 녹였다. 무거운 짐을 서로 챙겨주는 모습도 보였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을 위한 애도 행렬이었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가슴 속 아버지를 잃은 듯한 허전함과 서운함을 안겨주었던 김수환 추기경.당신의 삶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삶이었음에도 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을 아끼지 않았기에 그의 선종(善終)은 지켜보는 이들을 자못 처연하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거창한 정치이념을 실현한 분도,큰 기업을 경영한 분도 아니지만 그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메시지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삶의 지침이 됐다. 필자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누군가의 삶에 희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복지재단인 '본사랑재단' 발족을 통해 한걸음씩 시작하고 있다. 지난 동지에는 종로 노인복지회관에 계신 어르신들께 따끈한 팥죽 한 그릇씩 쑤어드렸는데,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1년 전 추기경이 남기고 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당부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김철호 본죽 대표 hope21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