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애 낳으면 승진? 왜들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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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양육 친화적 분위기 조성 우선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출산장려금을 준다,보육비를 지원한다,셋 이상 낳으면 아파트 우선분양권을 준다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내놓은 기존 처방이 도통 듣질 않으니 무슨 방도라도 내놔야겠다 싶었을 것이다. 출산 대책 주무부처인데 직원들의 평균 출산율이 다른 부처보다 낮다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반인 박탈감, 형평성 감안해야
안 그러고서야 무엇보다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중앙부처에서 아이를 낳으면 승진 혜택을 준다는 식의 대책을 내놓았을 리 없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직원 출산장려책엔 사실 주목할 만한 대목도 많다. 근로 형태와 경력 관리 모두 출산 및 양육에 유리하도록 적극 배려하고 모성관리를 강화한다는 게 그것이다. 임신이나 자녀 양육을 위해 근무시간을 선택하는 탄력근무제나 시간제 및 단축 근무제 등 이른바 유연근무제 확대는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도 시도해볼 만하고,출산 및 육아 휴직 때 성과 평가를 보통등급 이상으로 해준다는 것도 임신과 자녀 양육을 직장생활의 걸림돌로 여기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모성관리 강화를 위해 임신부에겐 승강기 우선 탑승,인근지역 금연 같은 조치를 취해주고, 당직 · 휴일 · 대기 근무에서 제외해 주며 영 · 유아를 둔 직원에겐 거주지 또는 직장 인근 보육시설 및 보육도우미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출산 및 양육 친화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실 · 국 · 과장의 배려 정도를 평가한다는 항목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임신에 대한 불안은 물론 육아와 교육에 대한 걱정,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큰 탓이기 때문이다. 임신해서 배가 불러와도 주위의 시선이 따뜻하면 걱정이 덜할 테고,출산 휴가 후에도 승진 등에서 불이익이 없다 싶으면 안심할 것이다. 그러나 승진 평가 시 자녀가 둘이면 0.5점,셋이면 1점의 가산점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계급이 중시되는 공무원 사회인 만큼 승진 혜택을 준다면 더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사람,미혼인 사람과의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특혜는 고사하고 임신과 출산 시 눈치나 안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다수 직장 여성,불안한 앞날 때문에 둘째는 엄두도 못 내는 보통 사람들에게 안기는 박탈감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안 그래도 일반 기업 근로자들은 공무원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8년 퇴직자(256만5595명) 가운데 근속연수 5년 미만이 86.7%에 달한다. 근속연수 30년 이상은 0.3%에 불과하고 10~20년도 2.7%,심지어 5~10년도 9.6%밖에 안 된다. 삼팔선 사오정이 결코 매스컴이 지어낸 게 아니란 말이다. 실제 서른살 안팎에 취업해 야근과 휴일 근무를 감수하며 대리 · 과장으로 승진해도 기쁨은 잠시,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야 한다. 사내 인터넷을 통해 업무 내용이 죄다 공개되는 만큼 과장 · 차장의 역할이 갈수록 축소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제2 · 제3의 인생을 준비할 여력도 없다.
결국 인생 이모작에 대한 대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하는 자영업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선배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후배들이 결혼을 망설이고 출산을 꺼리는 건 당연지사다. 실정이 이런데 출퇴근시간과 법정 휴가가 지켜지고 정년도 보장되다시피 하는 공무원은 아이 낳으면 승진혜택까지 받는다고 했을 때 그들이 느낄 심정을 생각이나 해봤는지 궁금하다.
출산율을 높이자면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청년실업을 해소하고,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삼팔선 사오정에 떠는 이들의 활로를 개척하는 게 우선이다. 아무리 부처 직원 출산율 제고 대책이라고 해도 그 파장이 다른 곳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혹여 '너희들만의 대책'으로 외면당하진 않을지 잘 따져본 다음 만들고 내놔야 마땅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