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코스피 1700에서도 산다

화학·기계 등 사흘간 900억 매수
삼성전자 등 블루칩은 차익 실현
연기금이 코스피지수 1700선 근처에서도 연일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다. 올해 증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배경으로 포트폴리오 내 보유 종목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의 매수세가 상승 탄력이 둔화되고 있는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주도력을 갖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펀드 환매가 일단락되는 2분기 이후에나 기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흘 동안 두산인프라코어 등 사들여

연기금은 1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화학 기계 건설 등을 중심으로 204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였다. 이로써 연기금은 지난 8일 이후 사흘간 모두 900억원 가까이 사들였다.

이재만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연초 공격적으로 매수하던 외국인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데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에 육박한 상황에서도 연기금이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주 하루평균 3000억원씩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하루 전 1500억원가량을 순매도하는 등 이번 주 들어 매수세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날 역시 하루 만에 '사자' 우위로 돌아서긴 했지만 순매수 규모는 1088억원에 그쳤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던 코스피지수는 막판에 유입된 외국인 매수에 힘입어 4.52포인트(0.27%) 오른 1698.64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일 1700선 돌파 이후 힘이 빠진 증시는 사흘째 보합권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보수적 성향을 지닌 연기금이 증시가 쉬는 틈을 타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올해 증시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특히 전 고점 영역인 1700선 언저리에서도 일정 수준의 매수세를 보이고 있어 현 지수대가 올해 증시의 지지선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흘간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두산인프라코어로 모두 315억원을 순매수했다. 한국전력(304억원) 삼성증권(160억원) OCI(152억원) 대한항공(129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연기금은 같은 기간 삼성전자를 369억원 순매도했고 삼성전기와 삼성화재 LG전자 현대차 등도 많이 팔았다.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많이 오른 종목을 일부 차익 실현하는 한편 그간 덜 오른 종목들로 매수세를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실적이 뒷받침되는 기술주와 자동차주 등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단기적으로 비중을 맞추는 차원에서 금융주 등 부진했던 종목을 일부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관 주도력 확보로 이어질지 미지수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연간 투자계획이 잡혀 있는 연기금 등은 주가가 빠질 때마다 꾸준히 '사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기관들은 아직 자금 여력이 부족해 지수 상승에 힘을 실어주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달 들어서도 펀드 환매 규모가 5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자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 마음 놓고 매수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 부장은 "펀드 환매가 일단락되고 자금이 다시 유입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2분기 이후에나 기관들의 증시 주도력이 회복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내수 방어주 등 소외주들에 대한 기관의 매수세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서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급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자금이 부족해 기관들은 종목별 순환매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지난해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팔았던 종목들은 추가 하락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당분간 매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원 · 달러 환율 하락 등으로 주도주들의 상승 탄력이 둔화되고 있는 틈을 타 산업재나 소재 등 경기 회복 및 원화 강세로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들도 매수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