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배씩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 퇴직연금 올해 16조 유입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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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빅뱅'…증시도 '훈풍'퇴직연금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어 금융시장의 '빅뱅'을 예고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4년째인 2008년 말 6조6000억원에 그쳤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14조원으로 1년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 전용 펀드에 투자된 금액도 작년 말 9693억원에 달해 조만간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12일 "현재 기업들이 퇴직금 충당금에 대한 손비인정을 받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은행 퇴직신탁과 퇴직보험이 올해 말로 폐지될 예정이어서 대안인 퇴직연금이 급신장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퇴직연금 적립금은 올해 말 최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기업 퇴직연금 도입 '러시' 예상
퇴직연금제도는 2005년 말 도입됐지만 확산 속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기업 입장에서도 메리트가 별로 없어 노조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도입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행 퇴직금 제도에서는 기업들이 사내에 퇴직금 충당금을 쌓으면 30%까지만 손비인정을 받을 수 있다. 나머지 70%는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 등 외부에 쌓아야만 손비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퇴직신탁과 퇴직보험이 올해 말로 폐지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기업들이 퇴직금 충당금에 대한 손비인정을 받으려면 퇴직연금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오는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면 신설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지금 퇴직금 제도하에서도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노조 등이 퇴직연금 도입을 반대해왔던 주된 이유는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 중간정산이 어려워진다는 점이었다. 퇴직연금 가입에 따른 '걸림돌'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들이 개정안 통과 이후 퇴직연금 도입에 대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연내 기업들의 퇴직연금 가입이 러시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연내 가입 가능성이 있는 주요 기업으로 포스코 GS그룹 LS그룹 등을 꼽고 있다. 또 현대차 SK그룹 등도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증시는 장기 투자자금 '훈풍' 기대주식시장은 퇴직연금 시장 확대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된다. 은행과 보험사에 쌓아 있던 사외 적립금 중 일부가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81년 한국의 퇴직연금에 해당하는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한 후 1996년까지 기업연금 펀드에서 3640억달러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해 다우지수 '10,000포인트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김성준 삼성투신 연금컨설팅팀장은 "퇴직연금은 한번 증시에 들어오면 10~20년 정도 장기투자하기 때문에 시장의 안정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안전중시 투자성향 등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중 주식이나 채권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되는 비중은 13% 수준(2009년 9월 기준)에 불과하고 86%가량은 은행과 보험사의 원리금보장 상품에 들어 있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상무는 "퇴직연금이 주로 은행과 보험 쪽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미국 등 선진국 사례에 비춰보면 한국도 앞으로 주식 투자비중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규모 자금이동이 예상됨에 따라 은행 · 보험 · 증권사 등은 전담인력을 확충, 치열한 유치전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전국 1000여개 지점에 퇴직연금 전담자를 각각 2명씩 배치해 영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올해부터 영업점 성과 평가 기준에 퇴직연금 유치 실적을 필수 항목으로 포함시키고 본점 신탁사업단 내에 퇴직연금부를 신설했다. 이에 맞서 한국투자증권은 65명인 인력을 두 배로 키우기 위해 신규 인력 채용을 서두르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