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도약! 2010] 받는 나라서 주는 나라로…한국, 세계의 손을 잡다

(8) 변방에서 중심으로
▶▶버려야 할 것

인도차이나 반도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메콩강엔 '제1 우정의 다리'가 놓여 있다. 태국 농까이와 라오스 비엔티안을 잇는 길이 1174m의 이 다리엔 영어로 '호주 국민이 태국인과 라오스인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적힌 기념판이 걸려 있다. 호주는 1994년 7억5000바트(약 200억원)를 들여 다리를 지어줬다. 물론 무상지원이었다. 호주의 선물은 '다리 이상'이었다. 이 다리는 사면이 육지로 막힌 내륙국인 라오스에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매년 수십만명의 라오스인과 태국인이 이 다리를 건너 왕래한다. 일본은 호주의 원조 방식을 재빠르게 답습했다. 일본은 2006년 태국 묵다한과 라오스 싸완나켓을 잇는 1600m 길이의 '제2 우정의 다리'를 지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총 건설비의 절반인 13억바트(약 300억원)를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조건이었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전문위원은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호주와 일본 등 선진국은 원조를 통해 나라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품격 있는 나라일수록 국제사회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적극적이다. 전 세계 선진국들이 저개발국과 개도국에 지원한 대외 원조 규모는 1960년 47억달러에서 2008년 1198억달러로 25배 이상 늘었다. 대외원조 선진국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국민총소득(GNI)의 0.3%를 해외 원조에 쓴다. 국제사회 기여도를 평가하기 위해 활용되는 지표는 대개 공적 개발원조(ODA) 비용과 국제기구 분담금 두 가지다. 한국은 둘 다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ODA 비용은 2000년 2억1200만달러에서 2008년 8억2000만달러로 증가 추세다.

올해는 전년 대비 22.6% 늘어난 1조3411억원(약 11억5700만달러)이 책정됐다. GNI 대비 0.13%다. 그러나 국제사회 기준으로는 '새발의 피' 수준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베푸는 게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 국제연합(유엔)은 선진국들에 GNI 대비 0.7%가량을 ODA 비용으로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8년 ODA 비용으로 연간 70억달러를 썼다.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방법으로 '따뜻한 대한민국'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지불하는 ODA 비용 대부분이 상환 의무가 있는 차관 형태의 유상원조라는 것도 문제다. 올해 ODA 비용 중 무상원조액은 4270억원으로 32%에 불과하다. 박준우 주(駐)벨기에 겸 주EU 대사는 "요즘에는 무상원조가 워낙 많아 유상원조 기금은 가져다 쓰겠다는 나라가 거의 없다"며 "실질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체감하는 한국의 ODA 비용은 절반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세금 안 내나"

한국은 국제기구 분담금을 내는 데도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분담금 체납액은 2006년 239억원,2007년 235억원에 이어 작년에는 678억원으로 급증했다. 유엔을 비롯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국제농업개발기금(IFAD),국제원자력기구(WEP) 등에 내야 하는 돈들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10월 미국을 방문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원들에게 "제발 내 체면을 봐서라도 좀 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OECD의 한 한국인 관계자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ODA 비용은 자선기금 정도로,분담금은 급하게 낼 필요가 없는 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ODA 비용과 국제기구 분담금은 국제사회 일원으로 내야 하는 '세금'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무조건적인 퍼주기 전략도 금물이다. 그러기엔 우리나라의 여력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국가이미지 제고 효과도 없다. 김근수 국가브랜드위원회 사업지원단장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원조 모델을 만들어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경제한류'로 통하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처음 시작한 KSP 사업은 1960 ·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경험,외환위기 극복 사례 등을 개도국과 저개발국에 전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까지 6년간 20여개국에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노하우가 이식됐다. 아프리카 가나는 한국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배웠고 아제르바이잔은 한국의 도움으로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한국의 앞선 농업인프라를 배우기 위해 10만㏊의 농업단지 개발을 한국농어촌공사에 맡겼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브뤼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채워야 할 것

한국은 지난해 영국과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수출 순위 9위에 올랐다. 1950년 이후 수출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나라는 일본(1955년)과 중국(1997년)에 이어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으로는 세계 15위,구매력환산지수(PPP) 기준 GDP는 세계 13위(2008년,세계은행)이다. 하지만 한국의 외교 수준은 아직도 세계 30~40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세계 10위권 국가들에 비해 해외 네트워크나 재외공관 운영 수준은 매우 낮다.

◆턱없이 부족한 외교관

실제 GDP가 한국에 이어 세계 16위인 네덜란드의 경우 인구는 1600여만명으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외교관은 3000여명으로 30%가량 많다. 인구 대비 외교관 수는 4.5배가량 많은 셈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년간 외교관 수를 거의 늘리지 않았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 규모는 1991년 1534억달러에서 2008년 8573억달러로 460%가량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외교관 수는 10% 수준(170명)밖에 늘지 않았다. 같은 기간 해외여행객은 연간 217만명에서 1300만명으로,해외 사건 · 사고는 554건에서 5233건으로 각각 급증했다. 대사관들로서는 '여행객과 해외 동포를 관리하기도 힘에 부친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지역연구는 엄두도 못 내는 대사관

외교관 수가 적고 재정적으로도 영세하다 보니 한국 대사관의 역할은 다른 나라 대사관들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유럽연합(EU) 주요 지역 대사관에 30~40대 젊은 소장학자를 몇 명씩 파견,해당 지역 연구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비용은 대사관에서 일체 부담하지만 연구주제는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놔둔다. '글로벌 전진기지'인 대사관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사관 직원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진행한다. 학계의 좁은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대사관을 통한 정치 · 경제계 인사들과의 교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이들은 결국 해당지역 전문가그룹으로 성장한다. 주EU 일본대사관의 문화 · 홍보담당 하카쿠 유키오씨는 "학자들의 기본 지식에 현지의 장기 연구가 더해지고 있어 교민들이나 해외진출 기업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사관들은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박사급 현지동포나 변호사 등 전문직 현지인을 재외공관에서 직접 채용할 수 있도록 100억여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이는 학술적 측면의 보완이라기보다 3년 체류 후 귀국할 주재원들을 행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외교통상부의 설명이다.

◆해외 진출기업 체계적 지원 필요

각국 대사관의 현지 진출 지원체계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문제가 터져야 대응하는' 현행 사후 대응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통상 마찰 등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쳐야 대사관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대사관 직원들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3년마다 보직이 순환되다 보니 담당 직원이 바뀌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해외 진출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현지 적응 단계부터 대사관과 기업 간 협력체제가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진출 기업들이 초기의 혼선과 시행착오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매뉴얼이다.

각국의 법률 · 정부체제 · 경제용어 등을 번역한 용어집 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외교통상부는 홈페이지에 간단한 '외교통상 용어사전'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2340개 단어에 대해 한 줄 정도의 설명을 해 놓은 것에 불과해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보다 훨씬 빈약하다.

브뤼셀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기업인은 "EU의 경우 규제의 종류만 권고(directive),규제(regulation),결정(decision) 등 서너 가지에 달하고 각각의 효력이 다르다"며 "이런 미묘한 차이를 알고 적확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례를 담은 풍부한 용어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브뤼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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