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동양화에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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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갤러리, '物我와 心手'전전통적으로 동양화법에서 '그린다는 것'(회화)은 사물 그 자체보다는 대상에 투영된 '나'를 묘사하는 것이고,화가의 솜씨는 사물을 제대로 옮겨 담기보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중국 남제시대의 화가였던 사혁은 그의 저서 《고화품론》을 통해 회화에 필요한 6가지 화법,즉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 응물상형(應物象形) 수류부채(隨類賦彩) 경영위치(經營位置) 전이모사(轉移模寫)를 이야기했다. 이같이 동양화의 화법으로 서양화의 '그린다'는 의미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보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갤러리가 새해 첫 전시로 마련한 '물아(物我)와 심수(心手)'전은 사혁의 육법 중 세 가지 화법(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을 열쇳말 삼아 현대 미술 속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살피는 기획전이다. 참여 작가는 권순철 김성호 김호득 도성욱 두민 박성민 박성열 박일용 윤병락 이두식 이원희 이재삼 이정웅 장이규 주태석씨 등이다.
'빛의 화가' 김성호씨를 비롯해 도성욱 박일용 이원희 주태석씨의 그림은 직관을 통해 형상을 보고 그 속에 담긴 본질적인 기운을 잡아내는 '기운생동'의 차원에서 해석된다. 김성호씨의 '새벽' 시리즈는 대범한 구성,감각적이고 자유분방한 필치로 도심의 야경을 그린 작품이지만 야경이라는 실체보다는 그 위로 쏟아지는 빛에 주목한다.
안개가 끼어있는 듯한 뿌연 화면에 숲을 그리는 도성욱씨의 그림 역시 숲이라는 실체보다는 다분히 대상 너머의 기운,마음 속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강렬한 필선과 붓 터치,뼈대가 살아있는 생동감과 속도감을 중시하는 작가들의 그림은 '골법용필'로 해석된다. 기운생동이 인위를 넘는 천부성이라면 골법용필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학습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인상적인 선으로 얼굴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권순철씨를 비롯해 일필휘지로 힘있는 선을 그리는 김호득,활기찬 이두식의 선,대나무나 산을 흑백콘으로 강렬하게 그리는 이재삼과 '붓의 작가' 이정웅씨 등의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응물상형은 대상이 갖고 있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화풍을 의미한다. 두민씨의 주사위와 카지노 칩,박성민씨의 얼음 속에 얼려진 과일이나 채소,윤병락씨의 사과,장이규씨의 소나무 그림들이 응용상형 화법을 준용한 것이다. 31일까지.(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