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뉴스] '추노' 목욕신은 사실일까?

중세 서양선 안씻으면 성인반열에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에는 게르만족에 대해 “강에서 혼욕했고 의복은 거의 벌거벗은 채였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강이나 개울에서 남여혼욕을 하는 풍습을 로마인들은 신기한 듯이 적어놓고 있지만 후기로 가면 로마시대 목욕장도 남여공용이 보편적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남녀가 나신을 드러내고 섞이는 것을 보고 격노한 초기 기독교도들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따라 여성들의 공중목욕탕 출입을 일방적 이혼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정도로 제제를 하고 나섰다고 한다. 수세기에 걸친 공의회 결과, 남여 혼욕은 금지됐다. 이에 따라 973년 칼리프 알 하킴의 사절이 프랑크 왕국을 방문한 뒤 “프랑크족 기사들은 1년에 두세번 밖에 안씻는다”고 놀란 기록을 남긴 일도 있었다.(무슬림은 기도를 위해 하루 다섯 번 씻어야 했다.)

하지만 성과는 일시적이었고 12세기 십자군들이 남여혼욕이라는 소위 ‘동방풍습’을 다시 유행시키자 혼욕은 다시 널리 퍼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건하신 종교인들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목욕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초기에는 물이 건강에 안좋다는 이론까지 제기되기도 했고, 말그대로 단벌신사인 중세인들의 생활 속에 목욕할 틈을 주지 않은 면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유럽 전역의 수도원 생활의 회칙이었던 성 베네딕투스 회칙에 따르면 환자의 목욕은 허락했지만 건강한 수도사의 목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락되지 않았다. 특히 젊은 수도사의 목욕은 야박할 정도로 드물게 허락됐다. 수녀들의 경우에는 규제가 더욱 세서 ‘정숙치 못한 방식’으로 목욕하는 것이 목격될 경우 큰 스캔들이 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목욕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성자의 징표로 여겨졌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4세의 어머니인 아그네스 처럼 평생 목욕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인 반열에 올려졌다.

1025년 부터 1037년까지 리에주의 사제였던 헤긴하르트는 한번도 욕조에 발을 담그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후계자인 니트하르트가 욕조에 들어간 경우도 죽을병을 얻었을 때 뿐이었다. 아우구스부르크의 사제였던 우달리히 폰 딜리겐(923-973)도 축일에만 목욕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당시에는 축일이 생각보다 잦았다고는 하지만 종교인들의 경우, 일반인보다 목욕의 기회가 크게 줄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경우는 모두 극단적인 예외의 케이스였고 중세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앞다퉈 몸을 씻었다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다고 한다. 수영을 즐겼던 샤를마뉴 대제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했고 아헨의 궁전 대목욕탕에서 자녀와 친구를 초청해 경호원들까지 함께 목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목욕은 귀족사회에서 오랜 세월동안 손님을 환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먼길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방문한 기사에게 목욕은 유유자적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멋진 보상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휴식이 식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고 성에 도착한 기사에게 목욕부터 권해졌다. 때에 따라선 멋진 식사가 목욕탕에 차려지기도 했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트리스탄의 목욕장면이 묘사된 세밀화에는 ‘사랑의 묘약’을 먹기도 전이어서 연정이 생기기도 전인 트리스탄과 이죄가 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속옷만 입은 이죄와 알몸의 트리스탄이 같은 욕조속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이 그림에서 두 사람간 욕정을 읽은 중세인은 거의 없었다는 게 오늘날 역사가들의 해석이다.

이처럼 목욕으로 접대하는 풍습은 꽤 오랫동안 이어저 15세기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왕을 초대하면서 식사전에 몇차례 뜨거운 목욕물을 대령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의 초대 고등법원장이었던 주앙 도베는 1467년 9월 만찬에 초대돼 온 샤를로트 왕비를 영접하기 위해 4개의 욕조를 준비해 뒀다고 전해진다. 마침 왕비가 생리중이어서 목욕을 하지 않자 준비된 욕조들은 시녀 차지가 됐다고 하지만. 이와 함께 비슷한 시기 파리 시장을 역임했던 드니 에슬래의 만찬에 초대된 루이 11세에게도 화려하게 꾸며진 3개의 욕조가 대령됐다고 한다.

최근 시작된 새 사극 ‘추노’에서도 공식처럼 주요 등장인물들의 목욕장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각종 사극마다 빠지지 않고 행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셈인데. 여자 주인공이 아닌 남자출연자들의 목욕신으로 장면이 확대됐다고 한다. 막상 중세 유럽의 목욕풍습은 비교적 상세히 전해지고 있지만 사극이 등장하는 시기, 우리 조상들은 목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목욕풍습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떠올랐다. 조상들의 목욕풍습이 좀 더 알려져 있다면 사극도 좀 더 리얼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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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책>
장 클로드 볼로뉴, 수치심의 역사-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이 나체 이해방식, 전혜정 옮김, 에디터 2008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1
Martin Kitchen,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Germa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