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바다에서 길어올린 질박한 詩

장석주씨 새 시집 '몽해항로' 출간
'저 복사꽃은 내일이나 모레 필 꽃보다/꽃 자태가 곱지 않다.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좋은 것들은/늦게 오겠지,가장 늦게 오니까/좋은 것들이겠지./아마 그럴 거야./아마 그럴 거야.'(<몽해항로 6-탁란> 중)

시,평론,소설 등 다양한 문학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석주씨(56)의 신작 시집 《몽해항로》(민음사)의 제목은 일본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 장씨는 "'몽해항로'란 꿈속의 바다를 가는 길로,흑해(黑海)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소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한 시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시 6편으로 이루어진 <몽해항로> 연작에는 바둑,기름보일러가 식은 방바닥,펄럭이는 흰 빨래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들로부터 사유를 이끌어간다. 물이 무겁고 차고 검은 흑해가 목적지이니만큼 연작에는 어두운 정조가 배어 있다. '작년보다 흰 눈썹이 몇 올 더 늘고/바둑은 수읽기가 무뎌진 탓에 승률이 낮아졌다/흑해에 갈 날이 더 가까워진 셈이다. '(<몽해항로 3-당신의 그늘> 중) 그러면서도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을 거야./아마 그럴 거야./아마 그럴 거야./감자의 실뿌리마다/젖꼭지만 한 알들이 매달려 옹알이를 할 뿐'(<몽해항로 6-탁란>이라며 미래를 놓지 않는다. 벼룩이나 파리,모기와 같은 미물을 통해 인간 본성을 성찰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성급함과 오류들이/내 얼룩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감히 무늬라고 우기지 못하고/크게 상심한다. /누군들 얼룩이 되고 싶었으랴'(<얼룩과 무늬> 중)고 자신을 되돌아 본 시인의 눈에는 어떤 것도 예사롭지 않다. '남의 피 빨며 산 것,/가난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마라./네 본색이다. /그렇게 살지 마라!'(<모기> 중)

수록작 대부분은 짧은 시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인 시에서 언어를 덜어내고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탐구한 결과가 반영됐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의 하이쿠와 우리 시조를 공부했다고 한다. '구름은 만삭이다,/양수가 터진다. /흰 접시 수만 개가 산산이 박살 난다. /하늘이 천둥 놓친 뒤/낯색이 파래진다. '(<소나기>)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