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사건 쟁점 정확히 파악" vs "남의 판결문 오자도 베껴"

● 서울변호사회, 2009년 상·하위 15명 법관 평가
총 689명 평균 76점…소폭상승
우수-하위법관 점수차 50점 넘어

"비록 패소했지만 재판장의 공정한 재판 진행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판사가 어떻게 '여기에서 이런 재판을 하고 있는 게 짜증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지 황당하더군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현)가 지난해 법관 평가를 진행하면서 꼽은 우수사례와 문제사례 가운데 일부다. 변호사회는 18일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전국의 모든 법관(24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9년 법관 평가 결과'를 대법원에 전달했다. 변호사회는 올해로 두 번째인 이번 평가에서 처음으로 우수 법관 15명의 명단도 공개했다.

◆"남의 판결문 오 · 탈자까지 베껴"

변호사회는 이번 평가에서 소속 변호사들이 직접 재판에 들어갔던 법관에 대해 △공정 · 청렴성 △품위 · 친절성 △직무성실성 △직무능력성 △신속 · 적정성 등 5개 항목에 대해 각 20점씩 100점 만점으로 평가토록 했다. 회원 6830명 가운데 1828명이 응답했으며 총 689명의 판사에 대해 평가했다. 대상 법관들의 평균점수는 76.38점으로 2008년 75.4점(456명)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변호사회는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서울고법의 김창석 부장판사,성기문 부장판사,이인복 부장판사,정현수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의 문영화 부장판사,여훈구 부장판사,이규진 부장판사,임성근 부장판사,임채웅 부장판사,홍승면 부장판사,황적화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의 소병석 판사,서울행정법원의 정형식 부장판사,한승 부장판사,수원지법의 최동렬 부장판사 등이다.

우수 법관의 평균 점수는 97.33점이었으며,서울중앙지법의 홍승면 부장판사는 100점 만점을 받았다. 이들은 "쟁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증거신청을 적절히 제지했다" "직접 면담을 세 차례나 실시하는 등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당사자들의 고민과 다툼의 원인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재판진행이 부드럽고 명쾌했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다.

변호사회는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지만,하위법관 15인도 선정했다. 이들의 평균 점수는 43.2점으로,최하 21.37점을 받은 판사도 있었다. 이들은 "제출한 준비서면과 증거자료를 전혀 읽지 않고 재판에 임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그만하지' 등의 반말을 일삼았다" "다른 판결문의 오 · 탈자까지 그대로 베껴 판결문을 작성했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다. ◆법원,"신뢰성 의문"… 평가는 점차 확대

법원은 법관 평가를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사건을 이기게 해준 판사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을 가능성이 있는 등 신뢰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며 "인사 관련 등 참고자료로 삼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법원 내부에서는 재판에서 '을'인 변호사들이 '갑'인 판사들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의 법관 평가는 그러나 점차 확대되는 추세여서 법원이 마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이어 지난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법관 평가제를 도입한 경남지방변호사회는 지난 12일 창원지법 형사 3부 박형준 부장판사,민사 2단독 임정엽 판사,민사 11부 최인석 부장판사,형사 1단독 최항석 판사 등 4명을 우수판사로 선정해 발표했다. 부산지방변호사회도 18일 총회를 열고 올해부터 법관 평가를 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방변호사회의 상급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도 법관 평가가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구체적인 법관 평가 방식을 연구 중이다. 장진영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대한변협도 법관 평가 취지에 동의하고 있고,보다 공정한 평가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모으는 등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법관 평가가 '인기투표'로 전락하지 않도록 변호사들 스스로 객관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