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검은 안경속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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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OA(사무자동화) 기기업체의 '컬러 복사기' 광고다. 수십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단 한 사람만이 득의양양하게 주먹 쥔 두 손을 치켜 들고 있다. 그의 옷 색깔은 짙은 카프리 블루.반면 온통 검은색 양복의 나머지 직원들은 하나같이 낙담한 표정들뿐이다. 광고 카피는 'Out of Black'.
'OB'를 내는 것이 오히려 성공일 정도로 '개성 없는' 패배자의 색으로 치부된 검은색.그러나 이 광고에서 검은색으로도 확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한 사람을 골라 검은 안경을 씌우는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전자제품 박람회) 전시장에서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사면 · 복권과 더불어 20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검은 안경'을 쓰고 돌아왔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3D(3차원 입체) 안경을 쓴 그의 사진은 최근 가장 인상적인 신문 인물사진 중 하나다. 스타일 전문가로 통하는 한 패션업체 홍보팀장의 '해몽'이 그럴 듯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무릎이 '탁' 쳐지대요. '이건희가 돌아왔다'는 것을 이렇게 알리는구나. 순간 머리 속에 오버랩되는 두 인물,박정희와 MB였지요. "
삼성 홍보맨들이 의도했든,안 했든 검은 안경을 쓴 이 전 회장의 이미지는 혹자들에게 두 전 · 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라이방'으로 더 친숙한 레이밴 선글라스는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미국을 찾아 케네디 대통령과 대담할 당시,백악관 실내에서조차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들고 있던 그의 사진은 이제 '전설'이 됐다. 1979년 덩샤오핑이 백악관에서 자기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큰 지미 카터 대통령과 마주 섰을 때 가슴만 보고 얘기했던 것처럼,약소국에서 온 왜소한 체형의 지도자 박정희는 선글라스를 통해서라도 '프라이드'를 지키고 싶었을 게다. 요즘 젊은 네티즌들은 '카리스마'와 '포스'라는 표현을 붙여가며 이 사진에 열광한다.
박 전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도 선글라스를 즐겨 쓴다. 때론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최근 그의 선글라스가 무척 잘 어울린 장면이 하나 있다. 지난해 말 원전 수주를 위해 UAE를 방문했을 때다. 원전 수주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임기 만 2년째의 역대 대통령들에게선 좀체 찾아보기 힘든 50%대까지 올랐다. 세 사람의 검은 안경에는 비슷한 상징 작용이 있다. '미래'다. 선글라스를 낀 박 전 대통령에게 아직도 국민들이 향수를 느끼는 건 그가 누구보다도 '한국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UAE에서 선글라스를 쓴 이 대통령은 녹색성장 시대의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의 3D 안경은 또 하나의 가전 혁명의 심벌이다.
최근 우리들에게도 검은 안경을 통해 '미래'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구현자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국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6월 남아공 월드컵은 그라운드 안에서는 '축구 전쟁'을,그라운드 밖에서는 글로벌 가전업체들 간의 '3D 전쟁'을 몰고올 것이다. 검은 안경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처럼 미래는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윤성민 생활경제부 차장 smyoon@hankyung.com
'OB'를 내는 것이 오히려 성공일 정도로 '개성 없는' 패배자의 색으로 치부된 검은색.그러나 이 광고에서 검은색으로도 확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한 사람을 골라 검은 안경을 씌우는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전자제품 박람회) 전시장에서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사면 · 복권과 더불어 20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검은 안경'을 쓰고 돌아왔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3D(3차원 입체) 안경을 쓴 그의 사진은 최근 가장 인상적인 신문 인물사진 중 하나다. 스타일 전문가로 통하는 한 패션업체 홍보팀장의 '해몽'이 그럴 듯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무릎이 '탁' 쳐지대요. '이건희가 돌아왔다'는 것을 이렇게 알리는구나. 순간 머리 속에 오버랩되는 두 인물,박정희와 MB였지요. "
삼성 홍보맨들이 의도했든,안 했든 검은 안경을 쓴 이 전 회장의 이미지는 혹자들에게 두 전 · 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라이방'으로 더 친숙한 레이밴 선글라스는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미국을 찾아 케네디 대통령과 대담할 당시,백악관 실내에서조차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들고 있던 그의 사진은 이제 '전설'이 됐다. 1979년 덩샤오핑이 백악관에서 자기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큰 지미 카터 대통령과 마주 섰을 때 가슴만 보고 얘기했던 것처럼,약소국에서 온 왜소한 체형의 지도자 박정희는 선글라스를 통해서라도 '프라이드'를 지키고 싶었을 게다. 요즘 젊은 네티즌들은 '카리스마'와 '포스'라는 표현을 붙여가며 이 사진에 열광한다.
박 전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도 선글라스를 즐겨 쓴다. 때론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최근 그의 선글라스가 무척 잘 어울린 장면이 하나 있다. 지난해 말 원전 수주를 위해 UAE를 방문했을 때다. 원전 수주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임기 만 2년째의 역대 대통령들에게선 좀체 찾아보기 힘든 50%대까지 올랐다. 세 사람의 검은 안경에는 비슷한 상징 작용이 있다. '미래'다. 선글라스를 낀 박 전 대통령에게 아직도 국민들이 향수를 느끼는 건 그가 누구보다도 '한국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UAE에서 선글라스를 쓴 이 대통령은 녹색성장 시대의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의 3D 안경은 또 하나의 가전 혁명의 심벌이다.
최근 우리들에게도 검은 안경을 통해 '미래'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구현자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국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6월 남아공 월드컵은 그라운드 안에서는 '축구 전쟁'을,그라운드 밖에서는 글로벌 가전업체들 간의 '3D 전쟁'을 몰고올 것이다. 검은 안경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처럼 미래는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윤성민 생활경제부 차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