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베테랑은 살아있다

"우린 아직 안 끝났다/ 구조조정 웬말인가 조퇴 강퇴 명퇴/ 내 자신을 원망할까 이 세상을 원망할까/ 끝나야 끝난거지 우린 아직 안 끝났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 모두 찾아가자."

대한은퇴자협회가 2001년부터 벌이고 있는 '히어로(hero:영웅) 캠페인'의 로고송이다. '당신은 이 시대의 영웅'을 슬로건으로 한 이 캠페인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65세 이상 가운데 모범적인 사람을 찾아 포상하고 있다. 현실은 그러나 '영웅'들의 외침이 조용히 묻히는 구조다. 청년 실업 문제는 모두가 같이 걱정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일 더 하려는 사람에겐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실제로 분위기는 중장년들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현역 시절 아무리 놀라운 실적을 올린 베테랑이라도 인력구조조정의 쓰나미가 밀려올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아직 젊은 직원들의 경우는 겉으론 얼굴을 구겨도 '물갈이'를 속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최근엔 전체 712만명이나 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올해부터 은퇴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임금근로자만 327만명이나 된다. 그나마 이 세대는 숫자적으로나 사회적 영향력으로 보나 관심의 대상인지라 노사정위원회가 나서서 정년연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도 관심이지만 베이비붐 이전 세대들은 박탈감이 더욱 커져간다.

한때 개인의 꿈이었던 장수는 이제 사회적 비극의 원천이 됐다. 현직에 있는 임원들 조차 "자칫하면 100세까지 살 텐데…"하면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21세기 들면서 10년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다. 미국의 중산층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집 사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 사는 중장년들은 장수가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비극적인 시나리오의 좋은 소재라는 걸 뼈 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연금은 고사하고 퇴직금도 한 푼 없는 사람은 갈 곳이 없다. 기술이 없는 문과 출신들은 몸으로 때울 일도 적어서 새삼 자신의 존재가치에 회의를 느낀다. 사정이 나은 경우라고 다를 것도 없다. 연금이 나와도 목돈이 없으면 작은 가게 하나 열기 어렵다. 취미 생활은 호사 중의 호사다. 퇴직자끼리 꼽는 최고의 취미가 서예인데, 그 이유가 씁쓸하다. "먹물 빼고는 재료비가 안 들어서"란다. 일 없는 현대인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베테랑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분명히 있다. 평균 연령이 40대이던 조선시대에도 행정가의 정년은 70세였고 육체 노동자는 66세,장인들은 60세였다. 황희 정승은 86세까지 현직에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베테랑들은 이제부터라도 자기 경영에 투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이 어린 상사들이 부담없이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춰야 하고, '왕년'을 얘기하는 버릇도 없애야 한다. 그럴 때라야 사회적으로도 축적된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경험 많은 베테랑의 잠재력을 높이 보고 그들을 활용하려는 중견,중소기업의 결단도 필요한 시점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