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원자력 독립국의 전제조건
입력
수정
원전공급자 위상구축 여전히 험난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가동,세계 20번째 원전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원전개발 막차를 탄 것으로,다음 해인 l979년 3월 미국 드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오랫동안 세계적인 원전 쇠퇴기가 지속된다.
핵연료 재처리가 기술자립 관건
그때 우리 핵무기 개발도 빠르고 깊은 단계까지 진전됐던 것 같다. 당시 정황,관련 인물들의 증언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핵확산 저지를 위해 우리 원자력 기술개발의 모든 과정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런 삼엄한 감시 속에서 우리 연구진이 숨어서 만들어낸,핵연료와 핵무기 물질인 옐로케이크(정제우라늄)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과의 첨예한 체제경쟁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곧 우리 원자력기술의 근간이 송두리째 뽑힐 뻔한 빌미가 됐다. 박 대통령 사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핵개발을 주도했던 연구인력들이 하루아침에 소리없이 사라진 데 이어 관련 기록과 장비 또한 모두 폐기됐다. 이후 '핵'이나 '원자력'은 금기어(禁忌語)가 됐고 평화적인 핵이용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우리 원자력연구소의 폐쇄까지 요구했지만 조직과 규모를 대폭 축소한 에너지연구소로 바뀌어 겨우 살아남았다. 1980년의 일로 원자력연구소의 이름을 되찾은 것은 한참 뒤인 1989년이다.
지난해 말 우리가 UAE(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전프로젝트를 수주해 세계 6번째 원전수출국으로 올라서기까지는 그런 역경과 우여곡절의 세월이 있었다. 그 성과는 분명 우리 원자력기술 · 산업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자,꿈을 현실로 이뤄낸 대단한 성취다. 원전수출은 기술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국력의 총화(總和)로서 나타나는 결과다. 지금까지 세계 원전시장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일본에 지배되어온 이유다. 이번 수주경쟁에서 맞붙은 미 · 일 연합팀과 프랑스의 방해,우리 능력에 대한 폄훼(貶毁)가 어떠했을지도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세계 3위 원전수출국을 넘보고 있다. 정부는 2012년까지 10기,2030년까지 80기를 수출해 세계 원전건설 시장의 20%를 점유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우리 원전의 경쟁력으로 보아 역량을 모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UAE에 이어 터키의 원전프로젝트 수주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원전공급자로서의 위상을 굳힐 수 있을까? 아직은 멀고 험난한 길이다. 원전수출 강국으로 올라서려면 원자력기술의 완전한 독립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장애물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까닭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그 걸림돌이다. 원자력기술 자립의 핵심조건은 핵연료주기의 완성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첫 단계인 우라늄 농축과 마지막 과정인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접근이 원천봉쇄돼 있다. 우라늄 농축을 못하면 핵연료 공급국에 종속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고,타고 남은 우라늄폐기물을 다시 플루토늄연료로 만드는 재처리가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인데도 지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형태 및 내용을 변형할 경우 미국의 '동의'를 규정한 한 · 미원자력협정 때문이다.
2014년 시한이 끝나는 이 협정을 개정하자는 논의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폐기가 선행된다면 우리의 재처리 문제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건 여전히 재처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재처리는 핵연료와 골칫거리인 핵폐기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그걸 못하는 한 우리 원자력기술의 독립을 말할 수 없고 미래 원전시장의 주역을 자임하기도 어렵다. 국가적 과제로서 원자력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재처리 권리를 가져올 확실한 방책을 세워야 한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